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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19. 2020

애들아 일어나서 카톡방 들어와!

온라인 개학 첫날 풍경

  지난 목요일 온라인 개학 첫날. 결국 여러 가지 우려로 인해 만들고 싶지 않았던 학급 단체 카톡방을 열었다. 개학하기 며칠 전부터 사용하던 수업 안내 플랫폼이 아침마다 접속자 폭주로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긴 시간을 기다려온 개학인데 "오전에는 접속 안되니까 오후에 접속되면 그때 공부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교실은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싶었다.


8:30 아이들에게 카톡을 보낸다. "자~~ 4-2반 친구들. 살살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물도 한잔 마시고 수업받을 준비 해주세요. 오늘 필요한 교과서는 수학, 사회입니다." 부지런한 아이들은 준비 다 했다며 나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한다. 카톡방에 활기가 돈다. 


8:50 아침 열기 활동을 올린다.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어떤 봄꽃을 좋아하나요?" 아이들의 글과 봄꽃 사진이 속속들이 올라온다. 올라오는 대로 출석체크를 한다. 10분이 흘렀는데 읽음이 0이 되지 않는다. 아무 말도 올리지 않는 아이들을 파악한다. 웃음이 난다. 학교에서도 꼭 늦는 아이 있듯이 온라인 수업도 지각생이 있다. 전화를 하고 잠을 깨우고 카톡방을 확인하라고 독려한다. 아이가 전화를 안 받으면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 상황을 확인한다. 카톡 계정이 없는 아이에게는 문자를 보내준다. 스마트폰이 아닌 아이에게는 패드로 하이*** 접속될 때를 기다려 수업에 참여하라고 한다. 그러나 하이***은 아침 내내 죄송하다는 공지만 대문짝. 답답하다.


9:00. 1교시 수업 활동을 안내한다. 아이들이 재빠르게 올리는 "네"와 이모티콘으로 수업활동은 이미 밀려 올라갔다. 아이들에게 "네라고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하면 다시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 "네"라고 대답을 한다. 그럼 또 규칙과 약속이 중요한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이 '네' 올리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면 또 그 말에 분위기 파악 안 되는 아이가 "그래?"라고 답하고 장난기 있는 아이는 이모티콘을 연속으로 10개쯤 올린다. 아... 1교시 수업 안내는 이미 하늘 저 멀리로 밀려 올라갔다. 또 웃음이 난다. 단체 카톡방도 교실과 똑같다. 내 말을 빨리 알아듣는 아이. 내 말을 들었으나 이해 못하는 아이. 내 말을 듣고 장난치고 싶은 아이. 내 말을 듣고 어깃장 놓고 싶어 하는 아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아 속상해서 아이들에게 화내는 아이. 이런 상황에서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아이. 그러든 저러든 딴짓하고 딴생각하는 아이.  



 

9:20 봐야 할 수업자료 링크를 4개 올렸는데 3개가 연결이 안 된다고 카톡방이 시끌하다. 다시 재빠르게 유튜브에 들어가 영상을 찾아 링크를 올려준다. 왜 안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연결이 된다. 놀랬다. 다행이다.



10:30 9시부터 카톡을 보고 있었더니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쉬는 시간 규칙! 핸드폰, 컴퓨터, 패드 등 손에서 내려놓고 몸을 움직이세요."라고 올리고 나는 컴퓨터 앞에서 벌떡 일어나 아무도 없는 넓디넓은 교실에서 줄넘기를 하며 영상과 사진과 텍스트로 뒤범벅된 뇌를 쉬게 한다


11:00  영상을 보고 질문에 답을 올리거나 과제를 작성하고 있는 시간.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언제 끝나요? 쉬는 시간 언제예요?" 나는 또 웃는다. 수업이 재미가 없거나 졸리면 아이들은 시계를 쳐다보거나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거나 다리를 동동 떨거나 옆 친구에게 장난을 치거나 괜히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시간을 물어본다. 예상대로 몇 시에 끝나요와 몇 시에 시작해요란 질문은 계속 올라왔고 그때마다 멀미 나도록 숫자를 타이핑했고 결국 4교시! 텅 빈 교실에서 혼자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똑같은 질문 그만!!" 소리를 질렀다. 그런 걸 알리 없는 아이가 또 묻는다. "선생님. 점심은 언제 먹어요?"



11:30 수학. 초등학생이 설명 없이 영상 보며 혼자 공부하는 수학이라니. 어떤 아이들은 시시하리만큼 쉬울 것이고 어떤 아이들은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구나 싶다. 수학익힘책을 풀어 채점하고 사진 찍어 올리라 했다. 순식간에 숙제를 내는 아이들. 그런데 읽음 숫자가 수학 시간 어느 지점부터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게 이렇게 해서 될 일인가. 진짜 개학하면 수학은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지 마음먹는다. 


12:10 드디어 점심시간. 아이들에게 점심 먹고 1시에 만나자고 올려놓고 밥을 먹은 뒤 떨어지는 꽃을 보며 학교 운동장을 괜히 돌고 돌았다.


1:20 마지막 수업 체육. 몇 가지 이론 영상을 본 뒤 마지막 유튜브 영상 보면서 신나게 두 번 춤추기! 나도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에서 춤을 췄다. 나는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춤을 췄다. 내가 실제로 존재함을 증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나의 몸을 그렇게 마구 움직여 보았다. 숨이 차기 시작했고 나는 춤추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안심했다. 나는 존재한다.


1:40 "오늘 하루 열심히 참여해주어서 고맙고 우리 내일 만나요"란 글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굴러 컴퓨터 앞에서 벗어나 고양이처럼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켰다. 오늘 하루. 정신없이 올라오는 아이들 글에 댓글을 달고 과제 사진을 체크하고 제출 안 한 애들 독촉하면서 뻥 보태 만 번쯤 카톡창을 위아래로 스크롤을 하며 수업을 하고 났더니 10시간 장거리 운전한 뇌 상태가 이렇겠구나 싶었다. 눈알이 아프고 멀미가 나서 어디 가서 드러눕고 싶었다. 내일 이 짓을 또 할 수 있을까? 도대체 하이***은 언제 정상화가 되는 건가? 아.. 그런데 내일 또 8:30이면 카톡방에 "애들아 일어나서 카톡방으로 들어와"라고 타이핑을 하고 있을 내가 그려지고 있었다.  "네"/ "다 봤어요."/ "다했어요."/ "언제 끝나요?"/ "언제 시작해요?"란 말로 도배가 되어있는 방이지만 하이*** 게시판보다 더 오붓했고 우리가 함께 있다는 연결감이 선명했다. 연결감. 온라인 수업에서 아스라한 안갯속을 헤치며 찾아 해 매듯 갈망하는 연결감...


2:00 1교시부터 5교시까지 학급 요록 체크리스트를 훑으며 온라인 수업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을 확인한다. 부모에게는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문자를 남기고 결국 아이에게는 전화를 해서 말한다. "00아! 오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네. 우리 내일 만나요!" "네? 어디서요?" "카톡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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