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경영, 지식경영, 시스템경영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에드워드 핼릿 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대왕이라 부르는 세종대왕은 조직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어떤 전략을 활용했는지 살펴보았다.
1450년 음력 2월, 세종대왕이 사망했을 때, 신하들이 한마디로 요약한 세종 정치의 비결은, ‘강거목장(綱擧目張)이었다. 강거목장의 의미는 국왕이 그물의 벼리(綱: 그물을 잡아당기는 그물의 제일 윗줄을 의미)를 들어 올리면 그물눈(目)이 저절로 펴졌다는 뜻이다. 즉, 중요 부분만 움직이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의미이다.
통치술에 관심 많았던 ‘한비자’도 그물의 벼리와 그물눈의 비유를 들며 현명한 군주라면 관리를 움직이지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세종을 연구하고 있는 세종 리더십 연구소의 박현모 소장은 세종에 빗대어, 불이 났을 경우 휘하 관리에게 빨리 물동이 들고 달려가라고 하는 일인지용(一人之用)은 낮은 단계의 인재 쓰기이며 그보다는 그에게 권한을 주어 많은 사람을 움직여 불을 끄게 해야 하는 이른바 조편사인(操鞭使人)의 위임경영을 할 때 벼리 장악 능력이 높아진다고 보았다. 세종은 이미 지금으로부터 600년전 오늘날 Empowerment의 장점을 파악하고 활용해온 것이다.
구체적으로 세종은 어떻게 벼리 장악 능력을 높일 수 있었을지, 세종이 여러 가지 일을 종합해서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한 가지 원칙으로 만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지에 대해 세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은 이렇다.
첫째, 임현사능(任賢使能) 이후 신상필벌(信賞必罰: 상을 줄 만한 훈공이 있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고, 벌할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뜻으로, 상벌을 공정 및 엄중히 하는 일)의 인재 쓰기이다. 임현사능은 어진 사람(어떤 일을 기획할 수 잇는 안목을 가진 사람)에게 맡기고 유능한 사람(맡겨진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내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부린다는 뜻으로, 위임할 인재와 부릴 인재를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임현사능이란 말은 원래 맹자가 한 말로, 맹자에 따르면 사람 쓰기를 잘하는 왕은 현자(賢者)를 높이고 재능이 있는 자를 부려서 준걸(俊傑: 재주와 덕이 보통 사람보다 특이한 자)들이 지위에 있게 하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만약 주어진 일만 잘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에게 일을 통째로 맡긴다든가, 기획력에 뛰어난 어진 인재에게 제한된 일만 하게 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례로, 세종은 국방 분야의 경우 정흠지, 김종서, 이천 등 어진 인재에게는 지휘권과 인사권을 통째로 위임했고, 최윤덕, 김윤수, 장영실 등 유능한 인재에게는 구체적인 임무를 배당해 일을 성취하게 했다. 어진 인재와 유능한 인재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는 일이 성취되지 않음을 세종은 잘 알고 있었기, 그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상 주고 벌 내리는 데 있어 엄정함을 실천했다. 임현사능이 인재들로 하여금 즐겁게 일하도록 하는 필요조건이라면, 신상필벌은 충분조건임을 세종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둘째, 세종은 사필사고(事必師古: 모든 일은 반드시 옛 것을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를 거쳐 제도를 밝게 정비하는(제도명비 制度明備) 조직운영을 실천했다. 세종은 어떤 일을 할 때 반드시 옛사람들이 성공하고 실패한 것을 거울삼고, 오늘날의 이롭고 해로운 점을 참작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당시 논의되는 거의 모든 문제가 과거에 이미 논의되었으며, 추구하는 해결책까지 역사 속에 다 제시되어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세종실록에는 ‘계고(稽古)’ 즉 옛일을 상고(詳考)하라는 말이 빈번히 나오는데 세종은 제안된 정책의 시행조건이나 진법(陣法)의 유형, 그리고 인재 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성공사례를 뽑아 검토하게 했다. 과거의 사례를 집대성하여 그것으로부터 성공한 조건과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려는 세종의 노력은 집현전이라는 싱크탱크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록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집현전에 명하여 옛 사례를 아뢰게 하라>는 지시가 바로 그것이다.
집현전의 역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나랏일을 의논하고 설계하는 지식경영 측면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지혜가 역사 속에 있다고 믿은 세종은 과거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사례를 통해 본받거나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 집현전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를 반영하듯 역사 속에 있었던 좋은 말과 아름다운 행동들을 절로 나누고 유로 묶어서 편찬하라고 지시한 세종에 의한 <치평요람>은 중종 11년, 1516년에 간행된 중국, 한국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세종 23년, 1441년에 편찬되기도 했다.
유능한 사람을 골라내서 잘 부릴 수 있는 뛰어난 인재를 조직의 벼리에 해당하는 곳에 배치하되, 그들로 하여금 선진적인 제도 안에서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한 것이 세종의 국가경영 비결이었으며 세종 재위 중반이 되면 뛰어난 행정능력 소유자들과 무예 탁월자들이 모두 제자리에 나아가 일하고 싶어 했으며, 국왕이 비록 정무를 보지 않았으나 별로 적체된 일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만큼 이는 세종의 강거목장 효과라고 판단된다고 박현모 소장(세종 리더십 연구소)은 요약했다.
대왕이라 불릴 만큼 위대했던 세종 리더십을 크게 3가지로 다시 정리해보면, 첫째, 현능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시키는 인재경영, 둘째,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국사를 기획하는 지식경영, 셋째, 현능한 인재들이 과거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일하게 하는 제도의 정비, 즉 시스템 경영으로 볼 수 있다. 세종의 용인술과 역사로부터 배우는 방법처럼, 누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리더의 안목과 능력을 바탕으로,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함과 동시에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여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도 함께 실천될 때 성과를 창출하는 조직 및 문화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본고는 본 저자가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인용시 출처표시는 기본 매너입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