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의 대화 프롤로그

교육현장르포<부모와의 대화 프롤로그>

by 조영철

이제 마주해야 할 교육의 현장은 ‘가정’이었습니다

열등감의 구조를 쓰고 난 뒤, 저는 한동안 글을 멈췄습니다. 부산에서 세 명의 여학생이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이후, 저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만 문제를 찾으려 했던 제 시선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아이들의 마음은 교실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자라났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기 전에 먼저 배우는 것은 언어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언제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넌 몰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우리 때는 그렇게 안 했어.’


부모의 말에는 사랑이 담겨 있지만, 그 사랑이 설명되지 않을 때, 말은 종종 상처로 바뀝니다. 학교의 경쟁은 제도로, 사회의 비교는 문화로, 그리고 가정의 언어는 감정으로 남습니다. 그 감정이 쌓이고 굳어질 때, 아이들은 세상보다 먼저 가족의 말에 지쳐갑니다. 부모님은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판단을 무시당했다고 느낍니다. 부모의 조언은 방향이지만, 아이에게는 명령이 되고, 대화는 점점 감정의 벽으로 바뀝니다. 결국 서로가 같은 말을 하면서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때부터 사랑은 ‘통제’로, 걱정은 ‘감시’로 오해받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지점을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학교라는 제도의 틀을 벗어나, 이제는 가정의 언어 구조,
즉 부모와 자녀가 어떻게 서로의 말을 오해하고 상처 주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부모와의 대화’는 단순히 부모를 비판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이 글은 두 세대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부모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며, 아이 역시 이제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성인입니다. 그 두 사람이 서로를 다시 ‘인간으로 만나는 과정’은 정말 필요한 과정입니다.


저는 이번 이야기를 통해, 부모의 사랑이 어떻게 오해되고, 어떻게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려 합니다. 이제 학교 밖으로 나가, 우리 모두의 첫 교실이었던 ‘가정’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부모와의 대화’는 단순히 부모를 비판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이 글은 두 세대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부모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며, 아이 역시 이제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성인입니다.


그 두 사람이 서로를 다시 인간으로 만나는 과정, 그것이 바로 교육의 마지막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부모의 언어를 이해한 뒤에는, 이제 아이들 자신의 언어를 돌아봐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말투로 나 자신을 대하고 있을까요? 어떤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고 있을까요? 그 질문이, 이다음 이야기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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