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의 대화 1편 – 사랑이 무시로 들릴 때

교육 현장 르포 < 부모와의 대화 1편>

by 조영철

1. 사랑이 왜 상처로 들릴까

부모의 조언은 대개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설명되지 않을 때, 아이는 그 말을 명령으로 듣습니다. 부모의 말은 진심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강요처럼 다가옵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장 쉽게 오해받는 순간이 바로 대화 속에서 일지도 모릅니다.


“그 길은 불안정해.”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 세 문장은 한국 사회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문장입니다. 부모는 세상을 더 많이 살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아이는 그 걱정을 신뢰보다 통제로 느낍니다. 부모의 언어는 사랑의 전달이 아니라 사랑의 왜곡으로 변하고, 그 순간 대화는 감정의 전쟁터가 됩니다. 우리는 그 전쟁의 시작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오해의 구조를 해부하려 합니다.



2. 부모의 말속에는 사랑보다 불안이 먼저 있다

부모의 조언에는 늘 사랑과 함께 불안이 섞여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겪었던 시대의 위기, 경쟁, 실패의 그림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며, 자신이 넘어졌던 길에 표지판을 세워줍니다. 하지만 그 표지판은 자녀의 입장에선 ‘금지문’으로 보입니다.

“안정적인 길로 가라”는 말은 사실 “나는 사실 네가 불안하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사랑이 불안으로 전이되고, 불안이 통제로 바뀌는 순간 대화는 단절됩니다. 그 불안의 근원은 경제적 불안, 사회적 불평등, 세대 간 경험의 차이 등으로부터 나옵니다. 부모는 자신이 겪은 불확실함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을 자녀에게 그대로 투영합니다.

유튜브 채널 시리얼(Cereal)의 영상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에서 ‘안 무서운 회사’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정말 못 사는 나라부터 선진국 반열까지 올라오면서, 사실은 각 세대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너무 어렵게 살았던 세대들이 지금 세대에게 불안을 많이 투영한 것 같아요.”

그 말처럼, 부모의 조언은 종종 사랑의 전달이 아니라 두려움의 복제가 됩니다. 그렇게 불안은 세대를 건너 전달됩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목소리의 떨림이나 한숨의 길이로 전해집니다. 부모의 목소리에는 늘 “네가 나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 마음보다 “부모는 모른다”는 단절의 메시지를 더 크게 듣습니다.

이처럼 세대 간 대화는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무게가 다릅니다. 부모에게 ‘조언’은 사랑의 표현이지만, 아이에게는 ‘불안의 상속’입니다.



3. 아이는 사랑보다 존중을 원한다

부모는 사랑을 주지만, 아이들은 존중을 원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너무 가까이 오면 아이의 자유는 사라집니다. 자녀가 원하는 건 허락이 아니라 이해입니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존중은 관계의 구조입니다. 아이는 사랑받는 것보다 ‘존중받는 존재’로 느껴지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태도를 더 기억합니다. “이건 어때?”라는 열린 질문보다 “그건 안 돼”라는 단정은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듭니다. 이때부터 대화는 정보 교환이 아니라 감정의 충돌이 됩니다. 아이는 스스로의 선택이 무시당한다고 느끼고, 부모는 자신이 배척당했다고 느낍니다. 결국 서로가 같은 외로움 속에 머물게 됩니다.

진짜 대화는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닙니다.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부모가 먼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말해주는 순간, 아이의 마음은 열린 창처럼 다시 빛을 받아들입니다. 그 한 문장은 관계를 되살리는 최소한의 이해의 언어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설득하려는 자세’에서 ‘자녀를 이해하려는 자세’로 바뀌는 순간, 대화는 교육이 아닌 성장의 과정이 됩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언어 교정이 아니라 세대 간 감정의 재정렬입니다.



3-1. 존중 연습 : 강점에 집중하기.

많은 부모님들은 학생들의 성적표에서 가장 못한 과목에 온 신경을 다 씁니다. 그러나 이는.’ 너의 부족한 점을 채워라’만을 강조하는 교육이고 이는 비관주의의 원천이 됩니다.(김주환, 회복탄력성 236p)


최근 긍정심리학이라는 학문에서는 약점에 집중하기보다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김주환, 회복탄력성 237p 왜 강점에 집중해야 하는가)


인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이너스 약점을 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10인 강점을 20,30,100 그 이상으로 크게 만드는 것이 더 행복하고 더 쉽다는 것이죠. 실제 역사에서 위인들은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해서 훌륭한 업적을 남깁니다.


강점에 집중해야 아이들의 긍정성이 올라가고 긍정적으로 자신을 생각해야 공부도 잘하게 됩니다. 많은 연구에서 긍정적 정서는 인지능력을 향상하고 사고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항의성과 문제 해결력을 향상하고, 집중력과 기억력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김주환, 회복탄력성 115p 긍정적 정서 향상의 효과) 그렇기에 학생들의 강점에 집중하는 방법은 성적표에 있습니다. 학생들이 부모님께 성적표를 가져왔을 때 가장 높은 성적을 가진 과목을 먼저 언급하는 겁니다. 그 과목에 대해서 칭찬해 주세요. 물론 성적이 안 좋은 과목도 있지만 그 과목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만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과목의 칭찬으로 남겨주세요. 부모님들께선 이렇게 반문하실 겁니다.


“부모가 채찍질을 해야 되지 않나요 아이가 해이해지면요? 부모는 아이에게 자극을 줘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많은 연구들에서 좋은 사건의 사진보다 나쁜 사건의 사진을 더 오랫동안 보는 경향이 있고, 타인의 좋은 점보다 나쁜 점에 더 집착하며, 긍정적인 기사보다 부정적인 기사를 더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신영준 고영성, 완벽한 공부법 24p 긍정적 기대가 주는 힘)

마커스 버킹엄은 아이가 부모에게 A와 F가 동시에 있는 성적표를 가져오면 A에 주목하지 않고 F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신영준 고영성, 완벽한 공부법 24p 긍정적 기대가 주는 힘)


그래서 아이의 성적에서 못한 부분에 방점을 두시는 것은 너무나 정상적입니다. 그러나 태도만 바꾸면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근본적인 물음 때문입니다.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합니다. 아이에게 자극을 주는 존재가 부모님만 있지 않습니다. 집 밖은 이미 자극의 왕국입니다. 어디를 가든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습니다.


“네가 되겠냐?”

“너는 왜 이렇게 게을러?”

“너는 왜 그렇게 의지가 없어?”


수많은 칼을 맞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온 아이한테 칼을 하나 더 꽂는다고 해서 아이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님들의 칼은 바깥 칼 보다 더 힘이 셉니다. 그렇게 아이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집은 아이에게 마지막 회복처여야 합니다.



4. 대화의 단절은 서로의 ‘설명 포기’에서 시작된다

많은 부모와 자녀는 싸우는 게 아니라, 설명을 포기합니다.
부모는 “말해봤자 모를 거야.”
자녀는 “어차피 안 들어줄 거잖아.”
이 두 문장이 반복되는 가정에서 대화는 감정의 벽을 세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벽은 단단해지고, 서로의 침묵이 예의처럼 자리 잡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존중이 아니라 포기입니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의 언어를 포기하는 순간, 관계는 유지되더라도 온도는 식습니다.

대화의 본질은 설득이 아니라 이해의 시도입니다. 상대가 내 말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래도 네가 왜 그렇게 말하는진 알겠다.” 이 한 문장만 있어도 관계는 다시 이어집니다. 어쩌면 가족 간의 화해는 거창한 사과보다 이런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5. 사랑은 설명되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는 결국 서로의 두려움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입니다. 부모의 두려움은 “너를 잃을까 봐”이고, 아이의 두려움은 “나 자신을 잃을까 봐”입니다. 이 두 두려움이 부딪히는 곳에서 대화는 가장 자주 멈춥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숨기기보다 나눌 때, 관계는 회복됩니다. “나는 네가 불안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이 솔직한 한마디는 때로 수십 번의 훈계보다 강력한 이해를 만듭니다. 아이는 그제야 부모의 말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대화는 이 두 두려움이 만나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열기 위해 필요한 건 이해의 언어입니다. 사랑은 설명되어야 하고, 설명된 사랑은 더 이상 명령이 아닙니다. 사랑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언어로 완성됩니다.

이해받지 못한 사랑은 통제로 남고, 이해된 사랑은 대화로 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사랑을 설명하는 것, 그 설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랑이 사랑으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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