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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나그네 Jul 23. 2020

소년의 동요 <유관순>, 소녀의 동요 <빛나는 졸업장>

부자연스러운 것을 고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출처 : https://nafrang.tistory.com/903

“교과서에 있는 것이 맞다”는 말 한 마디로 간단히 정리됐다. 유관순 노래에 나오는 “누나”라는 호칭에 대한 선생님의 간단한 결론이었다. 동요 <유관순>노래 중, “유관순의 누나를 생각합니다”라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서 논란은 “누나”였다. 소년들만 부르는 노래도 아닌데, 이것이 “누나”가 맞는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언니로 해야 한다고 했고, 남자 아이들은 교과서에 있는 대로 “누나”라고 해야지 왜 그걸 언니로 바꿔야 하는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중립적인 안으로 유관순 열사가 태어난 시기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을 감안해, “유관순의 할머니를 생각합니다”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런 논란에 선생님은 가장 중립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교과서에 있는 것이 맞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셨다. 선생님 본인의 입장에선 그 노랫말이 시험에도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까닭에 그 노래 가사와 관련해 교과서가 맞다는 답변이 가장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출처 : https://gdlsg.tistory.com/484

 유관순 열사가 모든 아이들에게 “누나”가 됐던 것은 작사가 강소천 시인의 개인적인 시각이 많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강소천 시인에게 유관순 열사는 13살 많은 누나였기 때문이다. 또, 박두진 시인의 <3월1일의 하늘>에서도 유관순 열사는 “누나”로 등장한 것도, 유관순 열사가 모든 국민에게 누나로 불리는데 한 몫 하게 된다. 두 사람에게 누나였을지 몰라도 모든 초등학생에게 누나가 될 수는 없었을 텐데 아직도 동요 속에서 유관순 열사는 “누나”로 등장하고 있다. 그에 따라 열사의 독립 행보가 “누나”라는 호칭 때문에 낮게 평가되는 것만 같다. 나라를 위해서 독립활동을 한 것이 아닌 동생들을 위해 무엇인가 한 것처럼 들린다. 안중근 형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윤봉길 오빠가 도시락 폭탄을 투하했다고 동요 속에 나온다고 가정해보자. 그 동안 의사로만 불릴 때보다 친근감 있게 들릴지 몰라도 독립 활동이 낮게 평가될 여지가 있다. 남성 작사가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호칭이 교과서에 있는 동요에 그대로 반영된 것도 문제이지만, 유관순 열사를 누나로 호칭하게 되며 독립 활동도 저평가 받게 만들 소지가 있는 것은 더욱 큰 문제라고 본다. 물론, 동요 속에 등장하는 호칭이라고 하지만 어린이가 배우는 노래 속에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결합됐을 때에는 일종의 세뇌가 될 여지도 분명 고려했어야 했다.


 동요 <유관순>이 소녀들이 부르는데 불편함을 느꼈다면, <빛나는 졸업장>은 소년들에게 거부감을 줬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를 처음 접했던 시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졸업하는 6학년 선배들의 졸업식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수업 시간에 배웠었다. 첫 마디부터 이상하게 다가왔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라는 표현이 나온다. 순간 졸업은 여자만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노래는 여자 후배만 불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때도 의문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은 간단하게 ”교과서에 있는 대로 부르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찝찝함을 담아 졸업식 노래를 불렀고, 의문스러움이 담긴 노랫말을 들으며 졸업을 했다.


출처 : https://0063.tistory.com/282

 드라마 <추노>에서도 남자들끼리 ‘언니’라는 표현이 등장해 논란이 있었다. 방송사에서는 조선시대에 손윗사람에 대한 호칭이 ‘언니’라는 표현이었다고 이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켰지만 여전히 논란이 있었다. 1938년 간행된 <조선어 사전>에서 언니에 대한 뜻풀이가 “형과 같음”으로 처음 등장하고 19세기 말 이전의 문헌에서 “언니”라는 단어가 등장한 사례가 없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언니”라는 표현이 남녀 모두에게 범용적으로 사용됐던 시기는 20세기 초반 정도일 것으로 판단된다. <빛나는 졸업장>의 작사가 윤석중 역시 20세기 초반에 많은 활동을 했던 인물로 작사가가 살았던 시대의 표현이 사용되어, 21세기가 20년 지난 현재까지도 어색한 표현 “언니”는 <빛나는 졸업장>을 통해 사용되고 있다. 또, 거의 공식에 가까울 정도로 졸업식 노래로 불리고 있다. 어색한 것을 알고 있지만 교과서에 있다는 이유로 옳은 것으로, 그리고 쉽게 바꿀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4378&cid=50802&categoryId=50809


 1996년 발표된 쿨의 <애상>은 2012년 10cm가 다시 한 번 부르면서 “삐삐 쳐도 아무 소식 없는 너”라는 가사가 “문자해도 아무 소식 없는 너”로 바뀌게 된다. 시대에 흐름에 따라 가사가 바뀐 것이고, 대중들에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아마 지금 리메이크가 됐다면 “카톡해도 아무 소식 없는 너”로 가사가 조금 변형이 됐을 지도 모르겠다. 동요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교과서에 있다고 해서 그리고 작사가의 고유성이 반영된 가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죽은 지식을 계속 학습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교과서도 사람이 만들기 때문에 충분히 고칠 내용이 있을 수 있고, 고칠 내용이 있으면 바로 잡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지 교과서가 맞다는 당연성은 근절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유관순 누나 때문에 논쟁하고, 빛나는 졸업장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언니를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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