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하여
9화.
제2의 아마겟돈 — 2000년의 하루
하늘 밖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흘렀다.
인간계의 하루는 루메아의 2000년이었다. 젊은 가지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꿈을 키우던 나날들, 그 기나긴 세월은 인간계에선 단 하루도 채우지 못했다. 바깥에서의 하루는 루메아의 천 년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하루가 돌아왔다.
목수의 손이 내일 학교에 납품할 책상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는 나무결을 꼼꼼히 어루만졌다. 표면이 매끄러워질 때마다 루메아 전역에 바람과 모래가 뒤섞인 거센 폭풍이 2000년 만에 다시 몰아쳤다. 세대를 거듭해 쌓인 결은 서서히 지워졌고, 그 아래 숨겨진 새로운 결이 드러났다.
이윽고 세 번의 묵직한 울림이 하늘과 땅을 동시에 흔들었다. 마지막에는 금속 장식이 표면을 스칠 때 번쩍이는 불꽃이 흩날렸고, 루메아의 밤하늘에서는 별들이 하나둘씩 꺼져갔다.
무녀는 손끝을 떨며 속삭였다.
“마지막 징조다. 2000년 동안 기다린 날이 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숲을 가르는 칼처럼 날카로웠다.
눈꺼풀 아래로 긴 세월이 스쳐갔다.
잃어버린 뿌리들,
사라진 계절,
그리고 멀리서 반복되던 망치의 메아리까지.
... 나무는 포장되었다.
루메아의 2000년이라는 항해 끝에, 결국 한 중학교 교실로 옮겨졌다.
겨울방학이 끝난 첫날,
1학년이 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직은 서툴렀다. 여전히 초등학교의 그림자를 안고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묘한 긴장과 호기심이 교실 공기 속에 얇게 깔려 있었다.
“이거, 우리 책상이야?”
“응. 근데 왜 네가 먼저 앉아?”
“내가 여기서 공부하고 싶으니까.”
짧은 눈빛이 부딪쳤다. 웃음인지, 경계인지 모를 표정이 스쳤다. 두 아이는 샤프로 책상 위를 콕콕 찍으며 장난처럼 이름을 새겼다.
“민수 바보.”
“지연 바보.”
장난은 곧 선을 넘었다. 민수가 가방에서 카터칼을 꺼냈다.
“영역 침범 금지.”
칼날이 나무결을 파고들 때마다,
루메아의 하늘에 전운이 번졌다. 멀리서 번개가 일 듯 잎사귀들이 떨었고, 나무속 깊은 곳에서는 금이 가는 울음이 스며들었다.
그때, 물리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그만해라.”
아이들은 칼을 멈추고 선생님을 바라봤다.
그녀는 책상 위에 손바닥을 얹고 잠시 숨을 골랐다.
“너희 눈에는 이게 그냥 나무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나무는 화학적 구조를 가진 재질이고, 그 안은 수많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다시 핵과 전자로 나뉘지. 그리고 그 전자들 각각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지구나 태양계, 은하계와 같은 구조일 수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하게 이어졌다.
“그 안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 쉴 수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건, 그 세계가 너무 작아서일 뿐이다. 하지만 네가 지금 칼로 이 나무를 베거나, 원자의 결을 무너뜨리는 순간, 그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종말이 일어날 수 있다. 그건 그들에게 있어 아마겟돈과 다르지 않다.”
민수와 지연의 손끝이 떨렸다.
“기억해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에도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도 생명이 있다.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네 손끝이 닿는 모든 것을 다루어라.”
칼은 내려놓아졌다.
책상 위에는 아직 따뜻한 숨결이 남아 있었다. 그 속에서, 아주 멀리서, 부서지듯 미세한 울림이 번져왔다.
민수와 지연은 애써 파여나간 칼자국 위에 여린 손을 얹었다.
마치 그 보이지 않는 세계에 사과하듯,
조심스레 어루만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