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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있다

by 영업의신조이

9장.

작은 방, 커지는 숨결 — 생명의 잉태


밤이 깊을수록,

윤서의 몸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지훈이 있는 리노베이션 현장에 들러 설레는 인사를 건네고, 함께 도시락을 먹고, 볕 든 나무 아래서 오후의 공기를 나눴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윤서는 전처럼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평범했던 계단이 길게만 느껴졌고, 몸속 어딘가 낯선 생명감이 자신을 조심하게 만들었다. 단지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매일 아침 어지럼증이 몰려왔고, 익숙한 향기가 메스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향기.

지훈이 늘 윤서의 존재로 기억해 온 바로 그 향. 라임과 우디가 섞인 담백하고도 부드러운 잔향. 이제 윤서는 그 향수를 쓰지 않는다. 그 작은 병을 열어 손목에 뿌리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인위적인 향이 혹시라도 배속 아이에게 해가 될까, 그녀는 어느 날 아침부터 사용을 멈췄다.


그 결심은 지훈에게 알리지 않았다.

다만 지훈은 어느 순간부터 윤서 곁에서 익숙했던 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아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공백은 명확하게 그의 감각 속에 있었다. 대신 윤서의 곁에서는 이제 더 진한 살 내음과 체온,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피어났다.


지훈은 여전히 일에 몰두해 있었다.

공사가 마무리될수록 더 섬세한 디테일과 감각이 필요했고, 그는 그 완성도를 윤서에게 바치고 싶었다. 하지만 윤서가 점점 집 밖을 나서지 않게 되면서, 그와의 데이트는 줄어들고, 대화는 자주 어긋났다.


윤서가 내뱉은


“괜찮아, 쉬고 싶어서 그래”


라는 말속에 지훈은 어떤 결핍을 느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날 밤,

비가 조용히 내렸다. 윤서의 집 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고, 은은한 조명만이 윤서의 화장대 옆을 비추고 있었다. 지훈은 늦게서야 작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그는 말없이 윤서 곁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엔 수많은 피로와 그리움이 얽혀 있었다. 윤서는 천천히 그의 손등에 손을 얹었고, 지훈은 윤서의 무릎 위로 머리를 기대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배로 몸을 옮겼다.


그 순간,

지훈의 이마가 윤서의 배에 닿자, 윤서의 익숙한 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살 내음과 아주 희미한 심장박동 같은 리듬이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그는 코끝을 한 번 움직여 윤서의 사랑스러운 향기를 찾아 나섰다. 그건 라임이나 우디의 조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윤서, 그 자체의 향이었다. 그리고 그 향 사이에 섞인 아주 작은 생명의 진동.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낯설지만 따뜻한 그 떨림이 그의 잠을 천천히 유도했다. 그것은 어떤 위로보다 깊고, 어느 언어보다도 선명했다.


윤서는 지훈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의 숨결이 자신의 배 위에서 부드럽게 오르내렸다. 이제는 그저 ‘둘’이 아니라, ‘셋’이 된 그 작은 세계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 사람은 너를 기다렸단다. 그리고 지금, 너를 향해 잠들었어.’


창밖으로 비친 달빛이 흐르며,

화장대 옆 전신거울에 세 사람의 실루엣을 비추었다. 윤서의 눈매, 지훈의 눈을 감은 얼굴, 그리고 아직 보이지 않는 그러나 확실히 존재하는 생명의 그림자가 조용히 그 틀 속에 담겼다.


거울은 조용히 그것을 지켜보았다.

말은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품은 채로. 그 자리를 단단하게 지켰다.


윤서는 거울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둘 다 너무 고마워. 엄마는 지금, 진짜 사랑의 향기를 맡고 있단다.”


그날 밤,

조용한 방 안에 진짜 사랑의 향이 피어났다.


"아가야~ 아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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