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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산통의 새벽 — 거울에 비친 고통과 기다림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공기는 여전히 축축하게 얼어 있는 것처럼 차가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지훈은 거실 창가의 어렴풋한 빛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루틴대로 양복 상의를 걸치고 신발을 꿰어 신었다.
"아가야, 엄마 잘 부탁해."
그는 윤서의 배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 윤서는 전신거울 앞에서 부른 배를 감싸며 가만히 웃었다.
"조심히 다녀와요."
그 평온하고 따뜻한 순간이, 그날의 고요한 시작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지훈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시동을 걸자마자 계기판에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였다. 엔진 경고등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지훈의 미간 주름으로 스며들 듯 다가왔다. 회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왠지 오늘만큼은 차를 몰고 나서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는 차를 놔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 플랫폼은 한산했다.
아침 출근길임에도 이상하게 조용한 공기가 주변을 감쌌다. 지훈은 열차가 들어오자 탑승했다. 앉을자리는 없었다. 그는 무심코 세로로 서 있는 메탈 기둥을 움켜쥐었다. 그 차가운 쇠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몸속 어딘가에서 잠겨 있던 감각이 '철컥' 하고 해제되었다. 지훈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스캔했다. 모두 너무 고요했고, 그 표정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윤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뭔가 이상했다. 아니, 지금 가야 할 곳은 회사가 아니라 윤서 곁이라는 직관이 속삭였다. 지훈은 기둥을 놓고 곧장 달렸다. 닫히는 문 사이로 몸을 밀어내듯 빠져나왔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거푸 누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내려오지 않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훈아… 나, 그... 그거 같아… 시... 시작된 것 같아."
윤서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 떨림이 그대로 지훈의 가슴에 울려왔다. 지훈은 지하 3층부터 계단을 뛰어올랐다. 숨이 차오르며 허벅지가 찢어질 듯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계단을 오르는 그의 다리는, 윤서의 아이가 이 세상으로 오르려는 몸짓과 겹쳐 보였다.
지상에 다다른 지훈은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걱정이 앞섰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집으로 가는 길의 빗줄기는 점점 더 난폭하게 변해갔다.
그 시각,
윤서는 화장대 옆 전신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배 아래로 무언가 묵직한 파문이 일었다. 처음에는 요통처럼 시작됐지만, 이내 허리와 골반을 휘감고 복부 깊숙한 곳에서 심장을 쥐어짜듯 고통이 밀려들었다.
"아..."
윤서의 숨소리가 길게 뽑혔다. 입술은 바짝 말랐고, 혀와 볼 안쪽은 이미 건조해졌다. 말라붙은 입천장 위에 침 한 방울을 만들어 적시기 위해 그녀는 혀를 위로, 옆으로, 아래로 조심스레 움직이며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그 와중에도 뼈마디는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고, 골반은 마치 쪼개질 듯 뒤틀려갔다. 자궁이 조여드는 고통 속에서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에 귀가 울렸다. 그 소리는 통증을 잠시 잊게 했고, 동시에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눈꺼풀 아래로 광대와 볼 사이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그 진동은 눈 밑을 타고 뒷목까지 전해졌다. 닭살이 돋은 채 머리끝까지 올라간 감각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진동하며 울렸고, 공포와 고통의 한복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의지의 불꽃이 급하게 그리고 강하게 타올랐다.
택시를 타기 위해 윤서는 1층으로 혼자 내려가야 했다. 지훈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트 현관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조차 영겁같이 느껴졌다.
다행히 1층 현관에서 지훈을 만났고,
둘은 급하게 그리고 조심히 택시로 향했다. 택시는 현관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대기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쏟아지는 폭우 속으로 두 사람은 동시에 택시로 뛰어들었다.
그 짧은 순간,
난폭한 비바람이 그녀의 얼굴과 가슴을 때렸고, 얇은 티셔츠와 바지는 어느새 피부에 달라붙었다. 바지 사이로 양수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흘러내렸다. 그것이 비인지 몸의 신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옷은 점점 무거워졌고, 촉촉함은 축축함으로, 축축함은 끈적한 무게로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의 옷은 속까지 모두 젖어버렸다.
지훈의 머리카락은 빗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고, 물방울이 그의 턱을 따라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택시에 오른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윤서의 손을 꽉 잡았다. 그는 무력했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할 뿐이었다.
그 순간,
룸미러 속에 비친 두 사람의 의지는 말없이 강렬했다. 윤서는 배를 감싸 안고 고통에 떨고 있었고, 지훈은 젖은 머리끝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그녀의 배를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빗물의 진동은 마치 새로운 생의 신호처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울려 퍼졌다. 택시는 병원으로 달렸고, 택시 안 거울은 이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윤서야... 조금만, 조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