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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해부학

마음은 어떻게 마음이 되었는가?

by 영업의신조이

5화.

감각 _ 마음이 세계를 처음 만지는 자리



감각은 마음이 육체를 통해 세상을 만나는 최초의 창이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기도, 해석하기도, 기억하거나 판단하기도 이전에, 우리는 먼저 세상을 감각한다.


빛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살갗에 닿는 바람을 느낀다.


이 모든 감각은 단순한 생생물학적 기능 이전에,

마음의 씨앗이 된다.

감각은 경험 이전의 경험이며, 의미 이전의 자극이고, 존재의 첫 떨림이다. 나는 감각을 마음의 발화점이라 부른다.

아무리 정교한 사고도, 고귀한 사상도 결국은 감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마찰,

혀끝에 남는 커피의 쓴맛,

늦여름 한낮의 눅진한 공기,

이 모든 것이 감정과 기억, 그리고 사유의 뿌리가 된다.



감각은 단순히 외부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아니라, 나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질감이자 색채이다.

인간의 삶이 이토록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근본적 이유는 감각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결코 같은 방식으로 느끼지 않는다. 시신경이 지닌 세포 수와 민감도, 색을 인지하는 범위와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빨강과 초록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고,

또 다른 이는 수천만 가지 색조를 세밀하게 구분한다.

청각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고주파에 민감하고,

또 어떤 이는 저주파에 예민하다.

촉각 또한 다르다.

어떤 이는 스치는 감각에도 크게 반응하고,

또 다른 이는 강한 자극에도 무덤덤하다.

추위와 더위, 후각과 미각 역시 개개인의 차이를 따라 전혀 다른 세계를 연다.

어떤 향은 누군가에게 위안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두통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인간 다양성의 기초 환경을 이루는 토대가 된다.



느낌은 감각에서 비롯되고,

인식은 느낌 위에서 자라며, 기억과 사고, 감정과 사유, 철학과 세계관은 이 초기 감각의 배경 흐름을 따라 형성된다. 결국 우리는 감각의 구조 위에 자신을 세운 존재라 할 수 있다.

감각이 다르면 느낌이 달라지고, 느낌이 다르면 삶을 해석하는 관점도 달라지며, 그로 인해 행동 또한 달라진다.

그래서 철학, 가치관, 정체성, 의지, 사랑과 관계, 고통과 기쁨, 구원과 창조성까지 모든 것이 다르게 흐르게 되는 것이다.


"감각은 인간 다양성의 기원이자, 차이를 탄생시키는 최초의 자궁이다."



어린 시절,

겨울 아침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느껴지던 냉기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발끝에서 번져온 그 차가움은 단순한 추위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이어져 있었다.

몸은 냉기를 기억했고, 마음은 그 감각을 조용한 저항으로 받아들였다. 감각은 그렇게 기억과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간다.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감각은 우리를 이해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1학년 봄,

등굣길에 벚꽃 잎이 내 어깨에 내려앉던 날이 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지만, 그 순간 이유 모를 울컥함이 밀려왔다. 벚꽃의 연분홍은 내게 상실을 떠올리게 했고,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의 마지막 미소가 겹쳐졌다.

감각은 종종 기억을 호출하고, 그 기억은 다시 감정을 일으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눈앞 풍경이 마음을 흔드는 방아쇠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감각은 고요한 감정을 깨우는 첫 불씨였다.


또 어느 여름날 공원,

작은 찻집 창가에 앉아 혼자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창밖에서 풀벌레 소리가 잔잔히 이어졌고, 그 소리는 어린 시절 외갓집의 여름밤을 불러왔다. 찻잔에 입을 대는 순간, 외할머니 집에서 마셨던 보리차의 온기가 되살아났다.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 감각이었다.


언어보다 먼저, 의식보다 깊은 층에서 솟아오른 무언가였다. 그 순간 나는 외할머니의 주름진 손, 그리고 그 무릎을 베고 들었던 옛날이야기까지 함께 떠올렸다. 감각은 순간적으로 시간을 되돌려 마음의 오래된 문을 열기도 한다.

외할머니의 거칠고 마른 손결은 말없이 사랑을 전하는 감각의 언어였다. 지금 중년이 된 나는 내 손등의 피부가 얇아지고 건조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 손길을 다시 떠올린다. 사랑은 감각을 통해 지금도 내 몸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유난히 향기에 예민해진다.

책상 위 오래된 시집을 펼쳐 한 장을 읽는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당신이 있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흙 내음과 풀벌레 소리, 젖은 머리카락, 마르지 않은 운동화까지 낯선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진다. 감각은 읽힌 언어보다 더 빠르게 마음을 스캔하고, 기억과 환상을 연결하며 새로운 장면을 창조한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감각이야말로 시의 시작이라는 것을.


감각은 생존의 수단이지만,

동시에 존재의 예술이기도 하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느낀다. 뺨을 스치는 바람에 눈을 감고, 눈부신 따스한 햇볕에 실눈을 뜨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살아 있다’는 충만함이 찾아온다.


감각은 지금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이자 삶을 비추는 가장 민감한 거울이다.



감각은 철학의 시작이기도 하다.

왜 어떤 빛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떤 소리는 눈물을 불러내는가. 감각은 질문을 만들고, 질문은 사유를 낳는다. 철학은 결국 감각에서 비롯된 호기심의 반복이며, 예술은 감각의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의 구조에서 감각은 가장 아래에 있지만, 모든 흐름은 거기서 시작된다. 감각은 질문을 낳고, 질문은 우리를 걷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가장 오래, 가장 정직하게 말해주는 언어다.

감각은 언어 이전의 언어이며,

마음 이전의 마음이다.


그렇기에 마음의 구조에서 감각이 가장 낮고도 깊은 층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감각은 언제나 지금 여기 있고,

그 위에 감정과 기억, 생각과 사상이 자라난다.


마음은 감각의 나무 위에 피어난다.

그 첫 잎을 기억하며,

나는 오늘도 바람의 감촉과 햇볕의 감싸 안음을 귀 기울여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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