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마음이 되었는가?
4화.
의식 _ 빛의 가장자리에 선 나, 반응하는 존재의 중심
의식은 단순히 ‘깨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의식을 ‘생각’이나 ‘집중’, 혹은 ‘인지’로 환원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각’이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나는 의식을, 자각의 방 안에서 세상의 기척을 느끼는 순간이라 부른다.
그 기척은 때로 감각으로, 때로 감정으로, 혹은 내면의 조용한 울림으로 도달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반응하는 것이다. 의식은 그 반응성의 지점에 피어나는 깨어남이다.
의식은 잠재의식이 표면으로 밀어 올린 조용한 흐름에 불을 켜는 일이다. 우리는 날마다 수천 가지의 자극을 받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이 인식 위로 떠오른다.
이 떠오름이 바로 의식의 작용이며, 그 선택은 결코 무작위가 아니다.
나는 어느 순간 특정한 말에만 반응하고, 특정한 장면에 유독 집중하며, 특정한 감정에 민감해진다. 그것은 나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이 선택한 방향성을, 의식이 마지막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순간, 왜인지 모를 이끌림으로 어떤 장면 앞에 멈춰 서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의식이다. 방향을 선택하는 감각적 직선 위에서,
나를 ‘지금 여기’로 데려오는 확증. 의식은 나를 ‘여기 있다’고 말하게 한다.
자아는 이 ‘의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매만진다. 그것은 처음엔 감각의 정렬이고, 곧이어 정서의 재구성이며, 결국에는 기억의 각인이다. 어떤 순간은 의식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버리지만, 의식된 순간은 나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조각이 된다.
의식은 사건을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시 자아의 형태를 결정짓는다. 의식은 지금 이 순간 나를 구성하고 있는 중이다. 생각보다 더 물리적이고, 감정보다 더 실제적이며, 존재보다 더 가까운 자리에서 작동하는 진짜 나의 중심이다.
나는 의식을 ‘반응의 조율자’라고 부르고 싶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는다는 것, 풍경 앞에서 숨이 막힌다는 것, 어떤 질문 앞에서 침묵하게 된다는 것. 그것은 모두 의식이 반응을 통해 나를 조율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반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그러나 그 반응이 단지 자극에 대한 반사적 반응이 아닐 때, 즉 무의식과 잠재의식, 그리고 지금의 내가 만나는 그 경계선에서 발생한 것일 때, 그 반응은 비로소 ‘의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것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능력이며, 그 순간 인간은 단순한 생존체가 아닌 ‘존재’가 된다.
중학교 3학년 겨울,
친구에게 아무 의도 없이 건넨 말 한마디에 그 친구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내 말은 단순한 농담이었지만, 친구는 웃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언어가 감정을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의식’했다. 그 이후로 나는 말 앞에서 멈칫하게 되었고, 의식은 그 자리에 ‘생각’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의식은 그렇게 윤리적 자각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의식은 상처를 자각하는 순간에도 생겨난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오래 지나 다시 떠올리는 그 순간, 내 안에 숨어 있던 감정이 반응한다. 고통은 무의식적으로도 느낄 수 있지만, 상처는 오직 의식된 감정만이 남긴다. 그것은 정서의 명암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로 인해 다음 순간을 다르게 살아간다.
의식은 고통의 단층을 비추는 손전등이며,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질문이다. 나는 아프다. 왜? 그 질문이 탄생하는 곳, 그 자리가 바로 의식의 자리다.
어느 날,
나는 길을 걷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을 우연히 보았다.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지 않았다. 그 낯선 익숙함은 단지 거울의 반사가 아니라, 의식이 나에게 비춘 빛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의식은 자아를 스스로 마주하게 한다.
자신을 보지 못할 때, 사람은 자아가 아니라 습관이 되고, 타인의 기대가 되고, 반복되는 표정이 된다. 의식은 나를 다시 나에게 데려오는 일이다.
기억은 오래된 책의 냄새와 같다.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낡은 종이 냄새를 맡은 그 순간, 어릴 적 여름방학 오후의 어떤 감정이 떠오른다. 누구와 함께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정서는 분명히 있다. 그리움도, 외로움도 아닌 단지 ‘있었다’는 감각.
의식은 때로 감정도 이름도 없이 남아 있는 흔적을 소환하고, 그 자리에서 나의 정체성을 다시 구성한다.
나는 의식을 ‘시간의 표면’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순간과 순간 사이에 피어나는 얇은 장막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생각을 듣고, 감정을 인지하며, 방향을 결정한다.
의식은 늘 현재에 있지만, 그 현재는 과거의 감각과 미래의 가능성이 교차하는 자리다. 그래서 의식은 불안정하고 긴장되어 있으며, 어쩌면 언제나 모순적이다.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면서 미래의 선택을 준비하는 곳, 그 둘 사이에서 나는 계속 나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의식은 가장 가깝고, 가장 어려운 나다.
자각하고 있다는 것, 느끼고 있다는 것, 반응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 흐름은,
마음의 구조에서 가장 밝은 층이다.
무의식이 그림자의 뿌리이고,
잠재의식이 흐릿한 여명이라면,
의식은 이제 막 떠오른 태양빛이다.
그러나 그 빛은 흔들리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어둠을 배경으로 존재한다.
나는 그 빛을 따라,
조금 더 정확히 나를 말하기 위해
계속 깨어 있으려 한다.
그 깨어 있음의 지속...
그것이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