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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있다

by 영업의신조이

1장.

거울 앞의 그녀 — 사랑을 준비하는 아침


햇빛은 오늘따라 이상하리만큼 부드러웠다. 겨울이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온기가 남은 아침이었다. 윤서는 거울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아무런 음악도 틀지 않은 채,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살과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천천히 한 가닥씩 모아 넘기며,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맞췄다. 깊고 어두운 검정색 눈동자가 빛을 받으며 반짝였다. 반사광은 마치 물결처럼 번졌다. 그 빛의 흐름 속에서 윤서는 자신이 지금 어느 계절에 서 있는지, 어떤 감정 속에 있는지를 천천히 짚어보고 있었다.



심리학을 전공하며 4년을 보낸 시간 동안 윤서는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느냐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지금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거울은 단순한 유리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매일을 복기하는 하나의 무대였다. 그 무대 위에서 윤서는 이제 자신을 훨씬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고,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고 싶은지, 또 얼마나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목선을 따라 로션을 바를 때, 그녀는 자신이 온도에 민감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손끝에 닿는 피부의 결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또 그 촉감이 심장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오로지 그녀 자신 뿐이었다. 168센티의 키와 55킬로의 균형은 유행의 기준이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존재였다. 몸은 단지 육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심리의 외피이자 감정의 그릇이었다. 요즘 그녀는 자신의 걸음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가볍고 안정적이라는 걸 느낀다. 무언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확신, 그게 바로 요즘 윤서였다.



창문을 살짝 열자, 이른 아침의 공기가 목 뒤로 스며들었다. 기온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공기 속엔 분명 새순의 향이 섞여 있었다. 윤서는 그 향기를 맡으며, 그 사람을 떠올렸다. 아직 정식으로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 어딘가엔 이미 줄기가 자라기 시작한 그 사람의 느낌이었다. 후각은 그녀에게 언제나 정직한 신호였다. 향기 하나로 기억이 되살아나고, 누군가의 존재감이 그리움으로 바뀌는 걸 그녀는 수없이 경험해 왔다. 오늘 이 향기 속에는 분명 미래의 장면 하나가 살짝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욕실에서 나와 드레스를 고를 때 그녀는 손끝으로 천의 감촉을 느꼈다. 실키한 베이지 톤의 원피스를 만졌을 때, 머릿속에 그가 그녀를 보는 순간의 표정이 그려졌다. 윤서는 자신의 외모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 수 있는지 알지만, 그걸 무기로 삼는 일엔 매우 서툴렀다. 대신 그녀는 그것을 ‘말 없는 시선’처럼 쓰고 싶었다. 상대의 시선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올 수 있도록, 결코 과하지 않게. 그게 윤서가 사랑을 준비하는 방식이었다.



화장대 거울 앞에 앉은 그녀는 핀셋으로 눈썹을 다듬으며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조용히 연주되고 있었다. 프랑스어 재즈는 알아듣지 못해도 감정의 결만큼은 잘 전해졌다. 따뜻한 색감의 보컬, 낮게 깔린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정제된 피아노 음들이 그녀의 심장박동을 일정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음악을 배경 삼아, 그녀는 속눈썹을 빗고, 입술에 틴트를 올렸다. 복숭아와 살구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달콤한 향과 맛. 그녀는 입술을 다물고 그 맛을 가볍게 음미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운. 이게 오늘의 그녀였다.



그녀는 향수를 손목에 살짝 뿌렸다. 아주 오래전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브랜드였다. 라임의 상쾌함과 우디 계열의 따뜻함이 섞인 그 향은, 처음부터 그녀를 닮은 것 같았다. 손목을 문지르고 목덜미에 살짝 얹자, 그 향이 방 안에 천천히 퍼져갔다. 그 순간, 그녀는 문득 떠올렸다. 만약 그가 이 향기를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성공이라고...



준비를 마친 그녀는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신에 찬 걸음으로. 이제 막 한 발짝을 내딛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내면 어딘가에서 이 모든 것이 예고되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그녀는 단지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를 거울 너머로 넘기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한 사람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한 존재로서. 사랑은 이제 시작될 것이고, 그녀는 그 중심에 서 있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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