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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있다

by 영업의신조이

2장.

거울 앞의 그 남자 — 심장을 매만지는 손끝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겨울과 봄이 맞닿는 계절의 선에서, 도시의 공기에는 미세하게 묵직한 차가움과 무언가 새롭게 일어날 듯한 미지의 떨림이 함께 머물러 있었다.


지훈은 창틀 너머로 스쳐가는 햇빛의 속도를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시계는 오전 7시 23분.

정해진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넉넉했지만, 그의 몸은 이미 예감처럼 깨어 있었다.


오늘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단순히 날씨나 일정 때문이 아닌, 설명되지 않는 어떤 감각이 그의 몸과 마음을 조용히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타일 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발바닥을 자극하자 그의 온몸이 또렷이 깨어났다. 샤워기를 틀자, 뜨거운 물줄기가 머리부터 어깨를 타고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따뜻한 물의 온도와 수압, 그리고 수증기가 피부의 얕은 긴장까지 모두 풀어주었다.


샴푸를 짜 손바닥에 펼친 뒤 머리카락을 감싸 문지르자, 깊고 깨끗한 숲의 향이 공기 속에 천천히 번졌다. 향기는 순간적으로 그의 의식을 먼 기억 속으로 데려갔다. 처음 건축 설계를 위해 도면을 펼쳐 들고 하얀 책상을 마주했던 날, 나무와 콘크리트가 공존하는 구조를 상상했던 그 정적의 공기. 그 감각은 지금도 그의 세계관 속에 살아 있었다.


면도날이 피부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감각은 그에게 아주 미세한 집중을 요구했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의 턱선을 따라 조용히 손을 움직이며 자신의 얼굴을 정리했다.


짧게 정돈된 머리, 아직 덜 마른 촉촉한 눈가, 그리고 표정이 없는 입매. 오늘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그 자신은 지금 만들어지고 있었다.


손끝으로 목과 광대, 턱 주변의 로션을 두드리며 그는 그 촉감 속에 잠시 머물렀다. 피부에 스며드는 향과 보습감, 그리고 그 잔잔한 온기가 전해주는 정돈된 안정감. 그의 하루는 이렇게 감각을 재배열하며 만들어져 갔다.


옷장은 정갈하게 정돈돼 있었다.

그는 셔츠를 고르며 소재를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쓸어봤다. 오늘은 크림 베이지 톤의 셔츠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톤 다운된 색상은 부드럽고 조용하지만, 그 안에서 풍기는 단단함이 있었다.


단추를 채우는 손놀림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정확했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얇은 메탈 밴드의 시계는 그가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였다. 고요하지만 단단한 리듬을 가진 디자인, 그것은 늘 지훈의 선택 기준이었다.


벨트와 구두, 양말을 고르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이 디테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지만, 지훈에게는 이 작은 선택들이 오히려 사람의 ‘결’을 드러내는 요소였다. 가죽의 질감, 솔기의 마감, 구두굽의 높이. 그는 그 모든 것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겼고, 그런 조화 속에서 자기를 표현해 왔다.


그는 건축가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 형태를 통해 정서를 짓는 일. 그에게 옷을 고르고 감각을 정돈하는 이 순간 역시 하나의 설계이고 구조적 완성이었다. 외부를 향해 나아가기 전, 자신이라는 공간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 건축가로서의 삶은 결국 삶 전체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향수를 꺼내 들었다.

라임과 베르가못, 약간의 우디 한 무게감이 뒤따르는 잔향이 특징인 향이었다. 이 향을 고른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저 이 향을 뿌리는 날에는 유난히 일이 잘 풀린다는 기분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이 향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목 안쪽과 목 뒤에 가볍게 얹었다. 공기 중에 번져드는 그 향이 피부를 타고 퍼지며, 그의 숨결에도 녹아드는 듯했다.


거울 앞에 다시 섰을 때,

지훈은 자신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고요한 시선이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오늘은 그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예감,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는 인연의 그림자.


그 빛은 아직 만나지 못한 그녀의 눈동자처럼, 맑고 깊었고 생명력 있는 것이었다. 지훈은 그 시선을 놓지 않은 채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오늘이라는 하루가, 그리고 그 하루 안의 어떤 순간이, 오랜 시간 기억될 것 같은 기분. 그건 그저 예감이라기보다, 그의 감각 전체가 보내는 메시지였다. 이것은 '우연'의 리듬이 아니었다.


그는 문을 열며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의 걸음은 무겁지 않았고, 가벼움과 긴장 사이 어딘가를 고요히 걷고 있었다. 신발끈의 마찰음, 문이 닫히는 소리, 그리고 현관문 손잡이에서 손이 떨어지는 감각까지,


지훈은 오늘,

자신이 세상의 흐름에 정확히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고 직관적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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