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울

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있다

by 영업의신조이


3장.

엘리베이터 거울 — 첫 시선의 떨림


윤서는 아파트 복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공기 속의 밀도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겨울의 마지막 숨결이 벽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고, 그 끝자락엔 어딘지 모르게 봄의 예고가 실려 있었다.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옅은 향을 다시 가다듬었다.

라임과 우디 계열의 잔향은, 그녀에게 있어 익숙하고도 따뜻한 자기 확신의 일부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 향이 어디론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어렴풋이 감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도착해 문이 열려 있었다.

윤서는 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레 발을 들였다.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한 걸음 더 들어서며 고개를 들었을 때, 거울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정면 대신 거울 속 반사된 자신의 어깨선을 바라보다가, 왼손으로 살짝 1층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 그리고 버튼이 눌리는 그 찰나의 저항감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손끝이 떨렸다.

그녀는 아주 짧게 숨을 들이켰다. 긴장이 아니라, 이유 없는 긴장처럼 느껴지는, 어디선가 무엇인가 시작되려는 무언가의 예고 앞에서 느끼는 예민한 떨림이었다. 그 미세한 감각은 피부 아래, 말초신경 끝을 타고 퍼져 나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려는 순간,

갑작스러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다가왔다.

문이 거의 닫히려던 찰나, 그 남자는 오른손을 부드럽고도 정확하게 뻗어 문 사이를 자연스럽게 막았다. 금속의 문이 그의 손에서 멈추었고,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약간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지훈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단호했고,

그 말의 어조 속에는 타인을 배려하려는 기품이 스며 있었다. 그는 윤서의 왼쪽 편에 조심스럽게 섰고,

두 사람 사이에는 엘리베이터 벽면 전체를 채운 거울이 놓여 있었다.


둘은 서로를 직접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거울은 그들을 마주 보게 했다. 윤서는 거울 속에 비친 그의 왼쪽 어깨너머 시선을 느꼈고, 지훈은 거울 반사 너머, 윤서의 손끝이 여전히 버튼 근처를 맴돌고 있는 걸 보았다.


그 순간,

아주 은은한 향기가 그의 후각을 건드렸다. 익숙한 조합이었다. 라임과 우디, 어쩌면 자신이 쓰는 향과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 향은 달랐다.

그의 몸에 스며 있던 잔향이 아니라, 누군가의 체취와 얽혀 다시 태어난 듯한 향기. 그는 이유 없이 그 향에 이끌렸다. 그저 같은 향인데, 다른 감정의 무게로 다가왔다.


윤서 또한 그 짧은 순간,

자신의 향기 안에 섞인 익숙한 잔향을 감지했다.

누군가가 뿌린 그 향이, 자신이 애써 만들어낸 조합과 맞물리며 공기 안에 묘하게 따뜻한 온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향이 아니라, 무언가 마음 안쪽을 건드리는 정서적인 울림이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는 그렇게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윤서는 손끝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고,

지훈은 잠시 고개를 들어 거울 속 그녀의 옆얼굴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정면은 고요했고, 거울 속의 시선만이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교차해 갔다.


1층에 도착하자,

윤서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거울 속에서 지훈은 그녀가 내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오른쪽, 버스정류장으로 연결된 로비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고, 그 걸음에는 무언가 사뿐하지만 견고한 결의가 느껴졌다.


지훈은 왼쪽으로 향했다.

지훈의 차가 있는 주차장 방향으로,

하지만 그의 눈은 거울 속에서 그녀가 사라지는 여운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을 그녀가 사라지기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문이 닫히기 전,

그녀는 한 번 돌아보진 않았지만,

그 향은 여전히 엘리베이터 안에 남아 있었다.

그건 잔향이 아니었다.

그에겐 강력한 예감의 온기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