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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찻잔 속의 미소 — 조심스러운 대화의 시작
토요일 오전 10시 45분.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첫 손님은, 아이보리색 코트를 입은 여자였다. 나는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녀는 잠깐 멈춰 서서 실내를 둘러봤다. 손에는 작은 가방 하나뿐이었고, 그 발걸음에는 어떤 결심과 조심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녀는 안쪽 창가 테이블에 조용히 앉았다.
메뉴판을 들춰보지도 않고, 핸드폰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저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주변 공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인상 깊었다.
나는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았다.
이 카페는 내가 운영한 지 5년이 넘었다.
그리고 오늘 같은 토요일 오전은 평소보다 조용한 편이다. 아마도 이 고요가 앞으로 만날 이 두 사람에겐 더 깊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키가 크고 단정한 옷차림의 남자가 들어섰다.
183센의 85킬로 정도 운동으로 다져진 듬직한 청년이었다.
그는 안경 너머로 실내를 천천히 훑었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 가볍게 손을 뻗어 다음 손님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나는 그가 혜진이 언니가 말했던 ‘회사 동료’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혜진이 언니는 말했다.
“회사 동료 지훈 씨? 되게 단정하고 말도 조심스러운데, 사람이 진심이 느껴져.
근데 요즘 너무 바쁘게 살아서… 너네 카페처럼 좀 조용한 분위기에서 누굴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
나는 혜진이 언니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운영중인 카페를 소개팅 장소로 내어 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봄 기운을 담은 온화한 아침 공기는 유리창을 넘어 카페 안에 부드럽게 감돌았고, 품미 짙게 느껴지는 품격이는 커피향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기에 충분조건을 각추고 있었다.
새로운 인연을 맺어주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장소라 할 수 있다.
지훈은 입구에 잠시 멈춰 섰다.
그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그녀에게 다가가진 않았다. 그는 반대쪽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그 순간,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올랐다.
혜진이 언니가 내게 말했던 또 한 마디.
“둘 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스타일은 아니야.
그래서 서로 사진은 아예 안 보여줬어.
직접 만나서, 느낌으로 알아봤으면 좋겠어서.”
나는 카운터에 준비된 라테와 브라질 블렌딩 잔을 들고 천천히 걸음을 각자의 테이블로 옮겼다.
먼저 윤서의 테이블로 향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한마디 말했다.
“혹시… 혜진 언니 동생분이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테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네, 맞아요. 잘 오셨어요. 천천히 기다리세요.”
다음은 지훈의 테이블이었다.
그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잔을 건네받았고, 짧은 인사 뒤에도 고개를 한 번 더 숙였다. 그 조용한 인사가 공간에 예의와 무게를 남겼다.
잠시 후,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조용히 앉아 흐르는 시간을 바라봤다. 정말 흥미로웠다. 둘 다 상대를 향해 직접 시선을 두진 않았지만, 공기 중에 흐르는 향이…
너무 익숙하고 조화로웠다.
라임과 우디 계열의 잔향이
공기 속에 나뉘지 않고 하나의 무게로 섞여 있었고,
그건 마치 두 감정이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10분쯤 지났을까,
그들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봤다.
순간, 나는 커피잔 속의 미세한 파동이 눈으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지훈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 혹시 윤서 씨세요?”
윤서는 떨리는 호흡을 가라앉히며, 짧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조심스레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작게, 미소만 머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찻잔 속에서 조심스럽게 꽃잎이 피어나는 순간을 떠올렸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그저, 적당히 따뜻한 시간 속에서만 가능한 감정의 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