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있다
5장.
공원의 그림자 — 서로를 알아가는 오후
계절은 이제 막 경계를 넘고 있었다.
겨울이 완전히 떠나기 전, 봄은 자신의 존재를 작은 움직임으로 알리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게 말라 있었고, 햇살은 아직 따뜻하지 않았지만, 그 속엔 분명 무언가 자라고 있는 기운이 숨어 있었다.
윤서는 공원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섰다.
햇빛을 등진 그녀의 실루엣은 부드럽게 번져졌고, 머리는 굵은 웨이브로 중간쯤 흘러내려 어깨 아래를 가볍게 감싸고 있었다. 햇살이 그녀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반사되었고, 바람이 지나가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천천히 들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내려왔다.
그녀가 뿌린 향은, 윤서 그녀만의 고유한 체취가 어우러져 하늘과 나무 사이, 바람결로 봄 하늘로 흩어졌다.
그녀의 원피스는 따뜻한 베이지톤이었다.
빛에 따라 살구처럼 보이기도 했고, 밀크티처럼 보이기도 했다. 얇은 가디건이 어깨를 덮고 있었고, 작은 브로치 하나가 단정하게 빛을 내고 있다. 발끝엔 광택이 은은한 아이보리 구두. 길이 살짝 짧은 원피스 자락 아래로 드러난 발목이 조심스럽게 조금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봄을 밟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지훈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한참 동안 바라보다,
더 늦어지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래 기다리게 했죠?”
윤서는 고개를 들며 웃었다.
그 웃음은 말보다 먼저 그의 마음을 이완시켰다.
지훈의 마음은 진정됨과 동시에 바로 북처럼 울리기 시작했고, 그 북소리는 그녀에게 전해지진 않았지만 지훈의 고막은 터지기 직전이었다.
함께 걷기 시작한 두 사람 사이에
아직 이름을 다 부르지 못한 감정들이 숨겨져 있었지만,
공기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 바람은 일정하게 불지 않고 그녀의 원피스를 휘날렸고, 때때로 등을 떠밀 듯 불어왔다가,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에 걸리는 척하며 살짝살짝 도망치듯 흘러 사라졌다.
윤서의 머리카락이 다시 한번 바람에 흩날렸다.
지훈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옆에 조금 더 가까이 섰다.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입가를 덮지 않도록 움직임을 막아주려는 듯한 동작. 그의 손끝은 닿지 않았지만, 그 제스처만으로도 그녀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걷는 길은 외곽의 오래된 산책로였다.
콘크리트가 아닌 흙과 자갈이 섞인 바닥이었다. 순간 윤서는 발아래 자갈을 밟고 살짝 미끄러졌다.
윤서가 순간 균형을 잃을 듯했을 때,
지훈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 옆을 받쳤다.
“여기 살짝 경사네요. 조심하세요.”
목소리는 낮았고, 시선은 흐르듯 부드러웠다.
그 순간 윤서는,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의 느낌까지 다르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찾아내기가 매우 힘들었다.
나뭇잎은 아직 자라지 않았지만,
햇살은 점점 길어졌고, 가지 끝에 작은 초록의 맺힘이 보였다. 그건 감정의 시작처럼 보였다. 말로 하기엔 너무 이르고, 감추기엔 이미 드러난. 서로를 향한 진폭은 시작되었다.
벤치에 앉은 두 사람 사이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 적은 말 안에는 많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지훈은 그녀의 손등 위로 시선을 잠시 두었다.
햇빛에 투명하게 비친 핏줄, 그리고 손끝이 떨리지 않도록 단정하게 모은 두 손. 그 손을 아직 잡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겨울이 지나가네요."
윤서가 조용히 말했다.
“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엔,
겨울이 고마워지네요. 봄이 이렇게 소중한 걸 느끼게 해 줘서.”
그 말에 윤서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지훈의 가슴 어딘가에 따뜻한 불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