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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우산 아래의 거리 — 마음이 가까워진 빗속
회색빛 하늘은 그날, 묘하게 낮게 깔려 있었다.
바람은 한 번의 주춤도 없이 몰려왔고, 그들의 발걸음이 외곽 산책로에 닿을 즈음, 비는 처음엔 속삭임처럼 시작되었다.
지훈은 오른손으로 우산을 들고
자연스럽게 윤서 쪽으로 기울였다. 우산은 반원보다 작았고, 윤서를 온전히 덮기 위해선 그의 어깨 하나는 바깥에 내주어야 했다.
윤서는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훈과의 사이에 정확히 팔 하나 너비보다 좁은, 아주 미묘한 간격을 두었다. 그 거리, 조금 좁은, 일 센티미터의 거리였다.
윤서의 왼팔과 지훈의 오른팔 사이에는
서로가 의식하는 정도로 가까운 체온이 맴돌고 있었고,
그 체온은 직접 닿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또렷하게 상대에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바람은 그 사이를 몇 번이고 스쳐갔다.
그리고 비는, 지훈의 왼쪽 귀에서 어깨, 팔과 허리를 따라, 천천히 스며들었다.
윤서는 지훈의 옷이 조용히 젖어 들어가는 모습을 거울처럼 보고 있었다. 셔츠가 점점 몸에 밀착되고,
왼쪽 팔 아래로 물이 고이고 뚝 뚝 떨어지고 있다는 걸 그녀는 느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 말 없이 걸음을 맞춰주고 있었다.
그녀는 미안했다.
무겁고 조심스러운 미안함. 하지만 그걸 입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대신 그녀는 그 미안함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행동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한 걸음.
그리고 아주 작게,
또 한 걸음.
그녀는 스스로 그 미세한 거리,
조금 좁은, 일 센티의 틈을 포기하기로 했다. 우산 속에서 누군가가 완전히 젖어야만 한다면, 그건 더 이상 혼자서 감당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윤서의 왼쪽 어깨가 조심스레 지훈 쪽으로 기울었다.
그녀의 왼팔이 지훈의 오른팔에 살짝, 아주 살짝 스쳐 닿는 순간,
둘은 동시에, 아무 말 없이 호흡을 멈췄다.
그건 살결이 맞닿았다는 물리적 사실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된 감각, 서로가 서로를 허락했다는 감정의 허용과 허락의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윤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젖어 가볍게 얼굴 옆을 감싸고 있었고, 이마 위에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지훈의 눈길을 강하게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이 한 번 더 불며, 우산은 지훈의 손을 벗어났다.
우산은 공중에서 두어 번 돌더니, 잔디 위로 떨어져
서서히 미끄러지며 사라져 갔다. 하지만 누구 하나 멀어지는 우산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두 사람은 완전히 비에 노출되었다.
윤서의 블라우스는 피부에 밀착되어
그녀의 어깨, 팔, 그리고 옆선이 그대로 드러났고,
빛은 젖은 천을 따라 윤곽을 조심스럽게 부각해 지훈에 눈에 고스란히 전달시켰다.
지훈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재킷을 벗어 윤서의 어깨 위에 덮었다.
그 순간, 그는 셔츠 한 장만 남게 되었고, 그 셔츠는 이미 비에 흠뻑 젖어, 가슴, 복근, 어깨의 선까지 그대로 노출되었다.
빛과 물,
그리고 체온.
그 안에서 윤서는 숨을 삼켜야만 했다.
그러다
발밑이 살짝 미끄러지자,
지훈은 반사적으로 윤서의 손과 허리를 붙잡았다.
손끝이 닿는 순간,
살갗의 떨림과 체온의 섞임,
그리고,
전류처럼 번지는 스파크.
그 감각은 말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피부가 기억했고,
심장이 반응했다.
윤서는 더는 멀어질 수 없었다.
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몸을 기댄다’는 것이
얼마나 강한 감정의 언어인지
절실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