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전장
씨
씨가 뿌려지면
그제야 안다
좋은 땅인지
딱딱한 돌밭인지
욕망과 이기심이 얽힌
세속의 흙에서는
사랑의 씨앗이 뿌리내리지 못한다
오랫동안 뒤집히지 못한 땅은
굳어 있어
빛조차 스며들지 못한다
나는 두 손으로 흙을 일군다
손끝의 흙냄새가
오래된 기억처럼 되살아난다
햇살이 흙을 쓰다듬고
바람이 그 속을 지나가며
조용히 속삭인다
“씨를 뿌리는 자보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나는
닫혀 있던 귀를 열고
굳게 다문 입을 열고
어두운 눈을 연다
그리고 기도한다
슬픔을 보게 하시고
아픔을 듣게 하시고
위로를 말하게 하소서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고
흙 속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깨닫는다
자라지 못했던 것은
흙이 아니라, 나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 위로
아주 작은 새싹 하나가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