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마음이 되었는가?
12화.
마음 _ 모든 흐름이 도달하는 그릇
마음은 단순히 감정의 둥지가 아니며, 생각의 연장도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머물다 가는 항구이자, 생각이 떠나는 출항지이다. 그리고 기억과 사고, 모든 흐름이 도달해 다시 스며드는 순환의 중심이다.
감정은 파동처럼 일어나고, 생각은 그것에 형체를 부여하며, 기억은 순간들을 보존하고, 사고는 그 질서를 짜 맞추지만, 이 모든 것은 ‘마음’이라는 구조 안에서만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마음은 한 줄기의 흐름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고 융합하는 감정과 인식의 다층적 교차점이다. 그래서 마음은 가볍지 않다. 그것은 언어보다 깊고, 논리보다 유연하며,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새롭게 정의한다.
나는 어릴 적 여름 끝자락의 고요한 저녁 하굣길을 기억한다.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 속에서 나는 말없이 나무 밑으로 뛰어들었다. 흠뻑 젖은 채 서 있던 순간, 어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우산을 내 어깨 위에 덮어주며 말했다. “이런 날은 마음이 좀 무겁고 느려지지?” 그때 나는 처음으로 ‘마음’이라는 단어가 외부 환경에 흔들리는 실체일 수 있음을 느꼈다. 그 장면은 사고도 기억도 아닌 마음에 남았고, 지금까지도 빗방울의 온기와 함께 나를 지탱하고 있다.
마음은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을 받아 적는 무언의 필경사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다. 마음은 기억의 배열을 다시 편집하고, 감정을 다시 입히며, 사고의 결과조차 새로운 문맥 속에서 재해석한다.
같은 기억이 오늘은 따뜻하고, 내일은 싸늘한 이유는 마음이 ‘나’를 기준으로 모든 감정을 다시 써 내려가기 때문이다. 마음은 논리의 바깥에서 작동하는 재서사화의 공간이며, 이곳에서 나의 진짜 말, 눈물, 침묵이 머문다.
사람들은 종종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마음은 충동이나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마음은 무의식과 의식, 감정과 사고, 기억과 선택이 얽힌 복합 구조물이며, 이 구조물은 매 순간 나의 존재 전체를 다시 쓰고 다시 짓고 다시 해체한다.
마음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공감의 문이기도 하고, 나를 보호하고 이해하려는 방어적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 기억은 대부분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제되지 않은 언행과 고려되지 않은 반응들이 서로에게 전달된다. 느낌도, 감각도, 사고도, 생각도 모두 각기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생물학적 차이, 사고의 구조적 차이, 관점의 차이,
이 모든 것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것이기에, 구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충돌이 반복되다 보면 상대의 깊은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게 되고, 그로 인해 큰 상처가 남기도 한다.
바로 그때, 진심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겉치레가 아닌, 곱씹고 곱씹어 나온 마음의 사과 한마디는 평생 원수로 여겼던 사람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울음을 터뜨리게 한다. 그것은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사랑스럽고 위로적인 힘이다.
특히 가족 관계에서 이 마음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우리는 흔히 가까운 가족이니까 다 이해해 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가족일수록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더 자주 충돌하고,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가족 간에도 마음의 사과와 인정, 그리고 상처가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이야말로 관계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다리다.
마음은 기억을 품지만, 기억보다 오래 남고, 감정보다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 진실이 숨어 있다. 내가 아팠던 순간보다, 그 아픔을 곱씹었던 마음의 시간이 더 길었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날보다, 그 사랑을 잃은 뒤에도 여전히 이어졌던 마음의 그림자가 더 깊었다. 그래서 마음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품은 나의 방식이다.
마음은 결국 ‘해석’이다.
그것은 나를 통해 세상을 다시 써 내려가는 공간이며, 내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가장 진하게 말해주는 장소다. 단지 감정의 보고가 아니라, 사상의 출발지이자, 의지의 발아점이다. 모든 판단과 선택은 마음을 거쳐야 현실이 된다.
사고가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 마음은 그 설명이 나에게 유효한지를 묻는다. 설명되지 않는 울컥함, 이유 없는 두려움, 이해할 수 없는 그리움, 그 모든 비합리적 진동은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기고 넘쳐흐르며, 나라는 구조를 세워간다.
그러므로 마음은 내가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이자, 세상이 나를 새기고 지워나가는 가장 정직한 기록지다. 마음은 삶을 번역하는 번역기이자, 감정을 예술로 전환시키는 유일한 화폭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나는 나를 수없이 다시 그린다. 붓을 드는 손이 달라질 때마다 마음은 다른 풍경을 그리고, 색이 바뀔 때마다 마음은 나의 철학을 새롭게 수정한다. 나는 단 한 번도 같은 마음으로 살지 않았고, 오늘의 마음 또한 내일의 나를 다시 쓰기 위해 존재한다.
마음은 나를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반복한 적이 없다. 그것은 매 순간 나를 다시 쓰는 서사의 손이며, 삶이라는 문장을 수정하는 유일한 연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