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있다
18장.
신의 대답 - 침묵의 불꽃 속에서 다시 찾은 삶, 그리고...
왼쪽 유방을 절제한 뒤,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회복의 일상이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상으로의 복귀는 기적도, 감동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 있는 자의 또 다른 선택일 뿐이었다.
마리는 출근을 했다.
옷장을 열었고, 그 안의 정장을 꺼내 입었다. 전신 거울 앞에 선다. 보정 브라를 착용한 가슴은 전날 밤 인터넷에서 새로 주문한, ‘보통의 형태’를 흉내 낸 그만한 곡선이었다. 오른손으로 왼쪽을, 왼손으로는 오른쪽을 매만지며, 마리는 마지막 남은 자존감을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어느 날,
출근 중 갑작스러운 어지러움 속에서 쓰러졌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 한 번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다시 동일한 병원의 복도에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같은 공간이었지만,
전혀 다른 진단을 받았다. 이번엔 오른쪽이었다. 제거했던 왼쪽 유방암이 전이되어, 이제는 오른쪽 유방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마리는 처음보다 더 무표정하게 의사의 말을 들었다. 몸은 이미 반응하지 않았고, 마음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오직 하나,
"아, 이제 마지막이구나"
라는 생각만이 그녀의 내면을 물들였다.
의사의 권고로 수술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마지막 남은 유방까지 절제한 그날 밤, 마리는 조심스레 거울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가슴 위로, 땀방울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 밋밋함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한때 곡선이 머물던 자리는 이제 평평한 평야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순간,
마리는 누를 수 없는 세찬 분노를 온몸으로 분출해 냈고,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물은 뜨겁게, 한없이 흘러내렸고, 그 울음은 다시 거울에 메아리쳤다.
그날 밤,
마리는 성당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늦은 저녁, 그녀는 빈 의자에 앉아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전면의 스테인드글라스, 크리스털 유리 성화 속에는 성모 마리아가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다. 마리는 그 눈을 바라보았다. 성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마리아는 마리를 보고 있었다.
하나의 색도 바래지 않은 그 유리는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고, 동시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듯했다. 마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저를 이토록 아프게 하시나요? 제가 어떤 죄를 지었기에…”
“당신의 뜻에 따라 성실히, 선하게 지금까지 살아왔거늘... 뭐가 더 필요하시나요…”
"제게 더 빼앗아갈 것이 남아 있긴 한가요?"
그러나 성화는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마리아의 눈빛은 꺼지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났다.
일상처럼 이어지던 상담실의 오후, 갑작스레 들린 경보음은 공기마저 끊어놓을 만큼 날카로웠다. 상담소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마리는 본능적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세 명, 네 명, 다섯 명. 모두 탈출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녀는 생각이 뇌에서 떠오르기도 전에 그녀의 발을 아이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연기 사이를 뚫고,
마리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안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그 안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불꽃은 천장에서 쏟아졌고, 바닥은 이미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마리는 오른팔로 코를 막고, 숨을 최대한 아꼈다. 그러나 한 걸음마다 시야는 흐려졌고, 몸은 점점 느려졌다.
불빛 사이에서 조그맣게 엎드린 아이가 보였다.
마리는 주저 없이 불구덩이로 달려 들어갔다. 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 그녀의 머리카락이 불꽃에 닿아 타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그 짧은 거리 동안, 연기는 피부를 찢었고, 숨은 기도를 지지고 가슴을 찢었다. 경보음은 더 이상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오직 심장의 고동만이 마리를 앞으로 밀어냈다.
방화문이 닫히기 직전,
마리는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엄마 윤서보다 3센티미터 더 큰 마리의 키가,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냈다. 문은 그대로 무심하게 닫혔고, 마리는 그 안에 홀로 갇혔다.
불길은 모든 방향에서 치솟았다. 마리는 숨이 막혀 불타는 바닥에 쓰러졌고, 의식은 그렇게 불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세상은 온통 하얀 붕대뿐이었다. 머리카락은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았고, 손가락은 서로 들러붙어 따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꺼풀은 위아래가 3분의 2 정도 화상으로 붙어 있었고,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너무 고통스러웠다.
눈을 뜨는 것도 고통이었지만,
가장 아픈 건 얼굴의 통증이 아니었다. 전신 화상 환자가 겪는 물리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피부를 덮은 붕대는 마치 살아 있는 가시와 바늘처럼, 감각을 되살리는 대신 고문처럼 매 순간을 온몸의 감각들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통증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벗겨진 피부 위로 스친 미세한 바람조차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참기 어려운 건, 마리의 마음이었다. 정신적 충격은 육체보다 더 조용히, 더 잔인하게 마리를 갉아먹었다.
그날 밤,
마리는 들러붙은 입술을 간신히 떨며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너무 보고 싶어. 내가... 내가... 너무 보고 싶어…”
울음을 멈추지 못한 채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앞, 바닥에는 산산이 깨지고 부서진 거울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조각 하나하나마다 발바닥에서 흘러나온 피가 묻어 있었고, 그 피 위로 마리의 눈물이 빗줄기처럼 떨어졌다.
한순간,
마리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 만큼 낯선 얼굴을, 그 깨진 파편 속에서 바라보았다. 거울은 거짓 없이, 진실을 잔인할 만큼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흘러나오는 피와 흐르는 눈물 속에서, 우주의 모든 소리는 깊은 침묵에 잠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