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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있다

by 영업의신조이

19장.

다 이루었다 — 침묵의 신과 마리의 길


마리는 성당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하얀 석상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입술을 꼭 깨문 채. 문틈 사이로 스며 나오는 은은한 향내가 아득한 기억을 건드렸다. 그것은 엄마의 품 안, 아빠의 따뜻한 손등, 그리고 유년의 어느 오후였다.


그녀는 왼손으로 입을 막은 채 숨을 들이켰고,

다른 손으로는 명치에서 왼쪽 가슴께로 손을 쓸어 올리며, 마치 깊이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끌어올리듯 몸 안의 생을 더듬었다. 심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맥박은 살아 뛰고 있었다. 그것이 고통이든, 생의 신호든, 지금의 마리에겐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오른쪽 유방암 제거 수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이어 전신 화상을 입은 그녀는, 그 연이은 고통 이후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마리는 다시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해, 그 벼랑 끝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붕대 자국이 남은 피부와 재생되지 못한 머리카락, 밤마다 찾아오는 통증은 ‘정상’이 무엇이었는지를 계속 되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일어섰다. 엄마 윤서가 그랬듯, 아빠 지훈이 그랬듯.


어느 날,

마리는 성당 안의 작은 기도실로 발길을 돌렸다. 내부는 적막했고, 스테인드글라스로 빚어진 크리스탈 성화가 햇살을 받아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마리아 상이 있었고, 그 성화 위에는 마치 거울처럼 지금의 마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감싸인 붕대, 고개 숙인 어깨.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까… 왜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으십니까…”


그녀의 기도는 곧 분노로, 간청으로, 결국 통곡으로 번져갔다.


“대체 나에게 뭘 원하시는 거예요? 왜 나만…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나는…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아무런 대답도 주시지 않으시려거든, 그냥 이 한 목숨 거두어 가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이제는 물을 마실 힘도, 눈을 뜰 힘도 없습니다. 제발… 이제 그만 거두어 주소서…”


그때였다.

성당 문틈 사이로 스며든 바람이 구석에 놓인 낡은 리플릿 하나를 마리의 발끝으로 밀어왔다. 그것은 수년 전, 그녀가 상담가로 활동하던 시절에 사용했던 홍보 전단지였다.


그 안에는 한창 예쁘고 자신감 넘치던 시절의 마리 사진이 담겨 있었다. 또렷한 눈망울, 건강한 피부, 환하게 웃는 얼굴.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모습. 마리는 떨리는 손으로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화상으로 들러붙은 손가락들 사이로 리플릿이 조금씩 구겨지며 접혀갔다.


“도대체 뭘 어쩌란 말입니까… 당신은… 왜 그토록 침묵하십니까…”


그녀가 무릎을 꿇은 바로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낯설지만 친숙한 울림이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가 속삭이듯, 아주 오래된 언어처럼.


“다 이루었다.”


그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리는 분명 자신이 깨달음의 문턱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그리고 여섯 살 무렵,

엄마와 마주 앉아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우리 예쁜 딸 마리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음… 나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될 거야. 엄마처럼 예쁘고 상냥한 상담사가 될 거야!”


“와~ 엄마는 너무 기쁘네~”


그렇게 두 모녀는 서로의 사랑을 두 눈으로 확인했고, 그 사랑은 훗날 누군가를 감싸 안기 위한 용기로 피어날 것을 예감케 했다.


“이 모든 고통이... 모든 아픔이... 모든 상실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감싸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였다는 것인가요…?”


오늘날까지 그녀는 상담가가 되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수많은 이론을 배웠다. 그러나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은 바로 지금이었다.


마리는 구겨진 리플릿을 가슴에 품고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성화 속 마리아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마리야.

마리아처럼 내 이웃을 사랑하고,

마리아처럼 이 가시밭길을

걸어내겠다.”


그녀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무릎이 곧게 펴지고, 축 처졌던 어깨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성당을 나서며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푸른 밤하늘엔 둥근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그 달빛 속에는 엄마 윤서의 눈과, 아빠 지훈의 온기가 담겨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의 오래된 영상처럼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 지훈이 윤서와 함께 아이의 이름을 짓던 그날의 장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사람들의 아픔을 감싸주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 사랑을 나누는 사람.”


마리는 고개를 들고,

밤하늘의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묵묵히, 단단하게

상담소로

향했다.


그날의 발걸음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났고, 그녀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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