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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있다

by 영업의신조이


20장.

검은 거울 아래 — 전체로의 귀환


마리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 않았다.

사실, 그건 이미 오래전부터였다.

거울을 깨뜨리며 흘린 피는 단지 육체의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존재가 남김없이 벗겨지는 상징이었고, 그날 이후 마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외모도, 건강도, 명예도, 그 어떤 것도 갖지 못한 채. 그러나 가장 많은 이들의 고통을 껴안을 수 있는 사람.


마리는 인간의 본질,

그 심연을 마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차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사랑을 전하는 인류애적 삶을 살아낸 자들의 숭고한 발자취를 따르고자 했다.

하지만 마리는 결국,

마리만의 길을 만들었다.


그녀는 유방암 절제 수술 이후 상실을 경험한 이들,

전신 화상으로 고통받는 이들,

외면당하고 버려진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상담소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그곳에는 어떤 비용도 없었다.

누구든 찾아오면, 마리는 끝까지 들어주었고, 끝까지 기다려주었다. 그 상담소는 마치 작은 교회 같았다.


세상을 원망하며 눈을 내리깐 이들은 상담 이후 고개를 들고나갔고,

암으로, 화재로, 상처받은 사람들은 마리의 몸을 보며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그녀의 살아 있음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었다.


무료 상담소 운영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시련과 고통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담을 마치고 돌아서는 내담자들을 마리는 반듯한 미소와 따뜻한 눈빛으로 어루만져주었다.


상담의 대가는 각기 달랐다.

어느 날은 한 아이가 식은 도시락을 건넸고,

또 어느 날은 말없이 놓고 간 봉투 속에 천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한 번은 집에서 쪄온 만두, 또 한 번은 김밥.

할머니의 삶은 감자와, 할아버지의 고구마, 그리고 호박도 마리의 책상 왼편에 놓였다.

그 모든 것은 사랑의 연료가 되어 상담소를 지탱했고, 마리의 숨결을 이어갔다.


그녀의 손은 더 이상 온전하지 않았고,

얼굴은 한때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그 손은 여전히 따뜻했으며,

그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깊었다.


사람들은 마리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고, 위로받았으며,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마리는 평생을, 힘든 이웃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며 살아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병상에 누운 마리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그녀의 몸은 가늘게 떨렸고, 눈꺼풀 아래에서 미세한 빛이 반짝였다.

침대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암 환자, 화상 환자,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상처 입은 이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모은 아이들.


그들 모두는 말이 없었다.

오직 눈물과 숨결, 그리고 손끝의 떨림만이 공간을 채웠다.


그때, 마리는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떴다.

누군가를 찾는 듯한 눈길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 밤하늘엔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다.


엄마 윤서의 눈, 아빠 지훈의 눈.

그 눈동자들이 마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는 작게, 그러나 분명히 미소 지었다.


“나는, 괜찮아요… 정말로.”


그녀는 속삭였고, 그 순간, 눈을 감았다.


입꼬리는 여전히 위로 향해 있었고,

눈동자는 더 이상 이 세상의 고통을 담지 않았다.

마리의 마지막 숨결은 조용히 흘렀고,

그 고요 속에서 한 송이의 빛이 피어났다.


그녀의 영혼의 빛은 이마에서 시작되어,

가슴을 지나 손끝으로 번졌고,

병실 안을 서서히 채우며 하나의 파동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파동은 천장을 넘고,

도시를 넘고,

바다를 건너,

온 인류의 무의식 깊은 곳으로 가닿았다.


마리의 영혼은 전체 무의식의 바다로 침잠되었다.

그날, 인류의 무의식 수면은 1밀리미터 상승했다.


그러나 그 1밀리미터는 수많은 생의 어깨를 어루만졌고,

어쩌면 세상을 구원할지도 모를, 빛의 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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