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머무는 자리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by 영업의신조이

10화.

봄비 _ 남은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사랑



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중에서…


아버님을 떠나보낸 지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에게 그 1년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하루하루 마음을 다시 정리하고 견디며 살아낸 길이었습니다.


아버님이 남긴 자리는 사람의 부재로만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여전히 일상의 작은 틈마다 아버지의 온기를 떠올리고 있었고, 그 감정은 너무 미세하여 일상을 살아내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흔들림이었습니다.


장인어른은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전하던 분이셨습니다. 저에게는 사위로서 그분에게 받은 그 사랑이 아직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해외 영업으로 자주 출장을 떠나던 시절, 공항에 갈 때마다,


“잘 다녀와라”

하고 아버님은 언제나 전화로 배웅을 해 주셨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입국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걸려오던

“잘 돌아왔네”라는 아버님의 전화 한 통...


그리고 코로나로 해외 매출이 끊기다시피 하던 그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매일 퇴근 시간에 걸려오던

“너무 걱정 말아라. 사랑한다”라는 그 한 문장...


그 기억들은 지금도 제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작은 등불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이는 아내의 세계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저에게는 아버님에 대한 감사의 기억이지만,

아내에게 그분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

‘아버지’라는 한 사람의 세계 전체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그리움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자신을 이루던 세상의 한 축이 사라진 후에 생긴

고요한 진동처럼 남아 지속적으로 마음을 흔드는 감정이었습니다.


봄비가 조용히 내리던 어느 날, 우리는 함께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내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이 길게 흘러내릴 때마다 그 흐르는 물 안에 어떤 실루엣을 따라가듯 시선을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 표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그리움의 얼굴이 아니라, 딸만이 알 수 있는 자리에서 떠올린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는 그 순간, 아내가 아버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형태만 바꾸어 그녀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제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시 한 줄이 떠올랐습니다.


“아빠를 보낸 지 벌써 1년

카페 창밖엔 봄비가 조용히 내린다


유리창 너머

맺힌 그리움이 벅차오르자

익숙한 실루엣이 배경 되어 또로록,

빗물 흘러내린다


옆 테이블에서 드라마 속 관식이가

슬쩍 나를 보며 말을 건넨다


캘리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중에서...



그때 옆자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 보던

드라마 속 ‘관식이 아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관식이는 딸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아빠 항상 여기 있어. 수틀리면 빠꾸, 그냥 냅따 아빠한테 뛰어와.”


익살맞은 대사였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이 흔들렸습니다.


아버지에게 평생 들어온 감정의 결이 그 말속에서 다시 되살아났던 겁니다. 아내는 결국 오랫동안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울음은 잃어버린 것을 향한 비탄이 아니라,

오랫동안 눌려 있던 사랑이... 봄비처럼 흘러나오는 따스한 그리움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는 알았습니다.

아버님은 아내에게서 떠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분은 여전히 아내의 마음 가장 첫자리에 조용히 앉아 계셨고, 그녀가 흔들릴 때마다 또 다른 방식으로...


“괜찮다, 나는 여기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에 실린 이 시는

단순한 그리움의 기록이 아닙니다.

딸에게 남아 있는 사랑의 방식이

어떻게 오늘의 삶과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입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에도,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리는 가끔,

잊고 있다고 생각했던 얼굴을 조용히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사실,

한 번도 우리 마음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봄비처럼 고요한 순간을 통해

다시 그 사랑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캘리그라피 by 인정 이영애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