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16화.
_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것들을 붙잡으려 애씁니다.
손에 쥐면 안심이 될 것 같고, 품에 안아야 비로소 내가 만족을 할 것만 같은 느낌 말입니다.
성취,
인정,
관계,
경험,
때로는 ‘이 정도면 괜찮다’는 확신까지도 붙잡고 있어야 마음을 놓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마다 마음은 늘 어딘가를 향해 있었고, 몸은 제자리에 있지 못했습니다.
이번 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에 수록된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는 그런 우리 자신에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넵니다.
애써 설명하지도, 다그치지도 않습니다.
다만 “붙잡으려 애쓸수록 비워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인기도,
자본도,
권력도,
경험도,
지혜도,
심지어 진리마저도
결국은 물처럼 흘러간다’는 이 문장은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정직한 세계의 질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가 태어난 자리는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한 삶의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칭찬을 좋아했던 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의 머리 쓰다듬, 등을 툭툭 두드려 주던 손길, ‘참~ 잘했다’는 말 한마디가 어린 저에게는 세상을 버티게 하는 하나의 중심 기준이었습니다.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의 칭찬이,
조금 더 커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나이에 맞게 잘 살아낸 흔적’들이 삶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의 꿈을 묻기보다, 그때그때 대한민국 사회에서 칭찬받을 만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자라났습니다.
대학교를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렇게 정해진 궤도를 따라 성실히 살아가던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선은 없었다는 사실을요.
칭찬을 받기 위해 붙잡아 온 커리어, 공부, 인기, 권위, 돈과 명예는 어느새 삶의 목적이 되어 있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더 높은 자리로 올리기 위해 쉼 없이 애써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말하듯,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세상의 물살은 더 거세게 몰아쳐 왔습니다.
마치 태풍처럼,
때로는 쓰나미처럼…
제2의 역경과 제3의 흔들림은 계속해서 다가왔습니다.
그제야 저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내가 내 의지로 만들 수도, 막을 수도, 유지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그 순간 찾아온 것은 거대한 흐름 앞에서의 무력감과 낙심이었고, 동시에 아주 깊은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전환은 이 시에서 말해 주는 것처럼 아주 소박하게 찾아왔습니다.
“툭, 내려놓는 순간.”
그 순간은 한여름 휴가 기간이었습니다.
유난히 마음이 지쳐 있던 그날,
가족들과 함께 시골 마을의 어느 강가를 찾았습니다.
다리 아래, 물이 고여 천천히 흐르던 강가에서 저는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이 양팔과 양다리, 온몸을 그대로 물 위에 벌리고 툭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제 볼과 팔, 허벅지와 종아리에 닿던 물결의 출렁거림이 또렷하게 전해졌습니다. 햇살이 피부 위에서 반짝이며 미세하게 떨렸고, 바람은 젖은 살결을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물이 흔들리는 소리, 다리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바닥 소음, 멀리서 들려오는 여름의 자연 소리들이 한꺼번에 겹쳐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처음으로 감각적으로 나 자신을 느꼈습니다.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역할이 아니라 존재로,
‘아, 이게 나구나’라는 느낌이 아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해가 서서히 기울며 강 위에 긴 빛을 남기던 그 저녁, 자연과 하나가 된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저는 저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회적 가면, 그 수많은 페르소나를 살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써 왔지만, 그 모습은 진정한 나의 얼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몸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에서 화자는 강물 위에서 ‘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합니다. 강을 거슬러 오르지도 않고, 강을 소유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햇빛과 바람, 뺨을 적시는 온기와 포근함 속에서 자신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이 시가 조용히 건네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내 마음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내 몸으로 돌아와야 했다는 것. 더 많은 것을 얻는 대신 내려놓는 법을 배웠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는 진실한 고백입니다.
마지막 문장,
“처음으로 온전한 나를 만났다”
이 선언은 그래서 성취의 문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래도록 사회의 요구 속에서 흩어졌던 자아를 다시 불러 끌어안는, 아주 조용한 재회의 순간입니다.
이제 제 삶은 더 이상 맹목적으로 쫓아온 것들을 반복하는 삶이 아니라, 자아와 영혼, 그리고 자신의 삶을 위해 선택하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는 독자에게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건넵니다.
"지금 붙잡고 계신 것은 정말 놓치면 사라질 것인지, "
"아니면 내려놓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는지"
그래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 조심스럽게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붙잡고 계신가요?”
“그것은 여러분을 위한, ‘나’를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사회와 주변의 환경이 요구하는 ‘어떤 나’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
잠시 손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어쩌면 여러분 또한
자신만의 ‘온전한 나’를 만나게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