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머무는 자리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

by 영업의신조이

22화.

어루만짐


_말보다 먼저 닿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종종 사랑을 말로 확인하려 애를 씁니다.

“나 사랑해?”,

“나 보고 싶었어?”,

“괜찮아?”


라고 묻고, 아프지 않냐고 살피며, 이렇게 사랑한다고 말해야만 비로소 내 마음이 전해진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삶의 가장 소중하고 깊은 순간들은 언제나 말보다 먼저, 체온으로 조용히 다가옵니다.


시집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의 〈어루만짐〉은

사랑이 말이 되기 이전의 순간들을 그대로 남겨 둔 시입니다.


이 시에는 거창한 사건이 없습니다.

이불 틈새로 스며드는 새벽 공기,

발끝에 닿아 하루를 깨우는 차가움.

아침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여름 오후의 강한 햇살이 알루미늄 샤시 위에 잠시 머무는 시간도 이 시는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무릎에 남은 상처 위로 아무 말 없이 내려앉던

엄마 손끝의 기억. 삶은 이렇게 사소한 감각들로 이어지고, 사랑은 늘 이런 방식으로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이 시는 다만,

우리가 언제 사랑받고 있었는지를

가만히 되돌려 놓습니다.

.

.

.

이불 틈새

새벽 공기가 발끝에 닿아

조용히

아침을 깨운다


창틀 위

오후 햇살은

알루미늄 샤시를

뜨겁게 달구고


무릎에 스친

상처 위로

엄마 손끝이

조용히 머문다


깁스한 다리

그 위를 덮는 저녁 공기 속에

아빠의 등으로

내 하루가 저문다

.

.

.

이 시 〈어루만짐〉에서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머무는 온도입니다.


상처를 고치려 애쓰지 않아도,

이유를 묻지 않아도,

그저 손이 머무는 것만으로

하루는 또 한 번

견뎌집니다.


깁스한 다리 위로 스며드는 저녁 공기, 아무 말 없이 등을 내어주는 아빠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하루가 끝나는 순간을 배웁니다.


사랑받고 보호받는다는 감각은 말보다 먼저 몸이 기억하는 일임을 이 시는 고요히 보여줍니다.


이 시집이 말하는 사랑은 크지 않습니다.

대신 낮고,

느리며,

엄마의 손바닥만큼,

아빠의 등만큼.


〈어루만짐〉은 우리가 너무 빨리 자라 버린 탓에

놓쳐 온 감각들... 손길과 체온, 곁에 있음... 을 다시 삶의 중심에 내려놓습니다.


사랑이란 결국,

하루를 끝까지 살아내게 해 주는 조용한 접촉이라는 것을....


『당신의 존재는 이미 아름답다』는 위로를 외치지 않습니다.


오늘의 하루는,

누군가의 온기로

그렇게 저물었을 것입니다.



캘리그라피 by 인정 이영애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