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말, 하나의 진실

언어의 전장

by 영업의신조이

금 간 그릇



그릇 하나 들고

오래 걸어왔습니다


물을 채울수록

금 간 틈으로

먼저 흘러내렸습니다


나는 자꾸 채우려 했습니다


비어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음속 욕망은

손바닥에 돋은 피비늘처럼

젖은 채 미끄러져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 그릇을

조용히 흙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흙은 말이 없었고

말 없는 것들이

오래 나를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물을 채우지 않고


비워 둔 채

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별빛이 내리고

금 간 자리마다

조용히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깨졌다는 것은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빛이 들어올 자리가

생겼다는 뜻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그릇을 고치지 않습니다


다만

깨진 채로

조용히


빛을

담습니다

.

.

.



금 간 그릇 by 영업의신조이






이 시는 @마리폴네르 작가님의 '한개의 그릇'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쓰여진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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