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책상 안에서

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하여

by 영업의신조이

3화.

루메아의 이름 _싹·나무·숲·별


싹은 위로 가는 법과 아래로 가는 법을 동시에 익혔다. 위로 가는 법은 빛을 골라 잡아가는 일,

아래로 가는 법은 물을 기억하는 일이었다.


빛은 위에서 부드럽게 당겼고,

물은 아래에서 조용히 밀어주었다.

그 당김과 밀림 사이에서 싹은 몸을 늘렸다.

아주 가늘게, 귓속말처럼. 처음 낸 잎은 모래알의 숨결보다 얇았고, 처음 내린 뿌리는 머리카락 그림자보다 가벼웠다.


세월이 지났다.

세월은 인간의 숫자로 환산되지 않았다. 다만 ‘많음’과 ‘멀음’으로 쌓여갔다. 많고 멀수록 어리고 작았던 싹은 나무가 되었고, 나무는 다시 씨를 만들었다.


씨는 바람을 배웠고,

바람은 다시 길을 만들었다.

뿌리는 흙을 품었고,

흙은 물을 품었다.

물은 빛을 끌어당겼고,

빛은 또 다른 따스함을 낳았다.


그렇게 첫 나무 곁에 둘째 나무가 서고, 둘째 곁에 셋째가 서면서, 나무는 군이 되었다. 군이 깊어지면 숲이 된다. 숲이 이어지면 평야가 되고, 평야가 겹치면 대륙이 된다. 대륙이 서로를 어루만지면, 마침내 별의 심장이 뛰었다. 별의 심장이 뛰자, 계절이 생겼다. 한쪽은 얼음의 말투를, 한쪽은 연둣빛 숨결을, 또 한쪽은 태양의 노래를, 마지막 한쪽은 황금빛 귀향의 예법을 배웠다.


아직 이름은 없었다.

이름은 늦게 오는 법이니까. 그러나 네 계절이 서로의 경계를 만들고, 경계가 서로를 비추며, 서로 다른 숲의 습관들이 태어났다.


차가워야 맑아지는 물,

따뜻해야 달아지는 즙,

젖어야 살아나는 잎,

말라야 돌아오는 씨,


이 단순한 이치가 서로를 살리고 서로를 기다리게 했다.


그때부터 ‘루메아’라는 말이 입에 올랐다.

‘빛이 숨 쉬는 땅.’ 빛이 숨을 쉰다는 말은, 빛에도 들고나는 리듬이 있다는 뜻이고, 그 리듬이야말로 목숨의 박동이라는 뜻이었다. 루메아라는 이름이 붙자, 숲은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법을 배웠다. 자기 자신을 부르는 이름을 얻은 세계는 방향을 얻는다. 방향이 생기면 길이 생기고, 길이 생기면 약속이 생겼다.


첫 약속은 간단했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잎이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뿌리라는 것.


두 번째 약속은 더 간단했다.

잎은 빛을 나누고,

뿌리는 물을 나눈다는 것.


약속이 오래되면 전통이 되고, 전통은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는 종족을 만든다. 북녘의 숲은 얼음의 발음을, 동녘의 숲은 새싹의 억양을, 서녘의 숲은 태양의 음색을, 남녘의 숲은 낙엽의 어조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아직 이름을 나누지 않았다.

다만 서로의 결을 더듬고, 계절의 숨을 눈으로 익히며, 같은 별의 다른 리듬을 배워가는 때였다.


기다림 속에서 첫 노래가 생겼고,

노래 속에서 첫 축제가 생겼다.

누군가는 떨어지는 잎을 귀향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얼음꽃을 새벽이라 불렀다.

누군가는 햇빛을 즙이라 했고,

누군가는 새싹의 향을 주문이라 불렀다.


이제,

먼지와 물과 빛과 바람이 서로의 이름을 배워,

마침내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고 별이 되었음을,


그리고,

그 별이 스스로를 ‘루메아’라 부르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순간이 바로 한 세계의 첫 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