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연인이나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곤 하는데, 항상 "저들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난 걸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개인적으로 TV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고 보는 특정 유형의 방송이 있다.
소위 '연애 예능'프로그램이다. 90년대 '사랑의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을 필두로 2000년대 '짝'을 거쳐 최근에 '나는 솔로'까지 거의 빼놓지 않고 시청을 하고 있다.
사실 내가 이런 '연애 예능'의 애청자라고 하면, 내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처음 본 사람에게서 받은 '첫인상의 선택'에서 회차가 거듭되면서 변해가는 생각들, 그리고 실제 커플로 진전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 그것이 내가 '연애 예능'에서 가장 흥미를 가지는 부분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본 방송을 놓치게 되면, 어김없이 다음날에라도 유료서비스로 시청을 하고야 만다.
최근에는 매주 수요일이 되면 와이프와 함께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소파에 나란히 앉는다.
'연애 예능'을 보면서 토론을 한다고 하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출연자들의 심리변화와 미묘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다음 선택을 예상해 보는 재미를 가진다.
남자 출연자들은 첫인상의 선택에서 크게 변화가 적지만, 여성 출연자들에게서는 변화가 잦은 편이다.
이런 여성들의 심리 변화를 내가 잘(?) 캐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래서 언제나 와이프의 예상이 적중하는 편이다.
그리고 예외는 있지만, 이런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 내가 몇 가지 주목한 것이 있다. 먼저 '첫인상의 선택이 끝까지 가는 확률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그리고 '의외로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이상형의 기준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친구나 가족, 직장과 학교에서 동료들에게 자주 묻는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형이라는 것이 과연 정해진 하나의 절대 기준일까?
그 질문에 과연 "내 이상형은 ○○야!"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한마디로 내 이상형을 표현하지 못한다.
약간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에 가까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뜻 말하기' 보다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것이 쉽고 더 익숙하다. 그래서 내게는 '싫어하지 않는 것'들이 곧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나 역시 누군가를 만나서 좋아하게 되고,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그 기준들이 여러 번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다정한 사람이 좋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똑같은 다정함에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180도 다르다.
누군가의 다정함이 내게는 세심한 배려로 다가오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다정함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누가 하느냐', '어떤 관계 속에서 행동이 일어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걸 말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보내는 장문의 메시지는 감동을 주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의 긴 메시지는 부담을 주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스킨십을 하면 '오늘부터 1일', 싫어하는 남자가 스킨십을 하면 '현행범'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이 짧은 문장이 이상형에 대한 생각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 '이상형의 상대성 이론(최종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