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by 눈빛이슬


남편은 부족한 돈을 마련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부족한 돈은 내가 마련해야 했다.

어떤 방법을 쓰든 돈을 내가 준비해야 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남편은 ‘내가 마련한다’라는 말을 하면 나를 나무랐다.

어차피 그 돈은 남편이 갚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마련하는 게 아니라는 그의 논리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것보다 생계가 더 중요했다.


난 조금씩 일해서 모은 돈으로도 버티고, 은행과 보험사에서 대출도 받았다.

그래도 안 되면, 친정 부모님께 죽는소리를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남편의 자존심이 상하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나 혼자 끙끙대기를 반복했다.


남들은 자산을 늘려가는데, 우리는 뭘 하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생활비가 부족할 때면, 막다른 길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그런 상황이 힘들다고 말하면, 남편은 언제나처럼 날 이해하지 못했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경제 공동체로서 힘든 상황을 같이 인지하고 함께 힘들어해 주길 바랐지만, 되레 큰소리만 쳤다.


“대체 왜 힘들어? 몇 개월만 버티면 다 해결돼.”

“대출 좀 받는 게 그렇게 힘들어? 어차피 그 돈 내가 갚아야 해. 넌 그걸 갚을 능력이 없어”

“어차피 내가 조만간 돈 많이 벌면, 그 돈 너도 같이 쓸 거잖아.”


어차피 그 대출을 갚을 사람은 능력 없는 내가 아니라, ‘곧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자신’뿐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또, 자신을 위해 대출을 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자신의 돈을 쓰지 못하게 될 거라는 협박 조로 들렸다.

나는 그렇게 남편에게 능력 없는 사람처럼 무시당하고, 존중받지 못했다.


‘내가 알던 그 남자가 아니야. 왜 저렇게 이기적으로 변했지?’

‘자신감이 넘치던 그가 왜 저렇게 자격지심이 많아졌지?’


힘든 상황이 그를 변화시켰다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남편을 합리화했고, 내 행동과 말투 때문에 남편에게 자격지심이 생긴 것은 아닌지 날 뒤돌아보곤 했다.

그렇게 난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노력이 언젠가는 그에게 닿기를 바라며.


하루는 그가 부부싸움 도중에 소리쳤다.


‘지금 내가 빌빌 기며 사는 것처럼, 너도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어오면 기면서 살아!’


그동안 그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내 노력은 헛수고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가 스스로 바닥에 내동댕이쳐버린 그의 자존심이었다.

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기로 맹세했던 결혼 서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힘든 시절을 지나 좋은 때가 왔을 때, 난 그의 발아래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난 힘든 시절도 힘들고, 좋은 시절도 힘들어야 하는 거였다.


남편은 그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난 이미 실망했고 상처받은 후였다.

가정경제는 계속해서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혼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이런 취급까지 받아야 하는 것이 더는 견디기 힘들어졌다.

이전 03화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