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보다 보면, 투잡을 뛰는 가장들이 많다.
주로 택배기사나 배달기사를 하며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가장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도 본업 이외에 그게 어떤 일이 되었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지금 우리는 다른 모습일지 상상하곤 한다.
‘네가 수고가 많다.’
‘고맙다’
‘미안하다’
결혼생활을 통틀어 시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어쩌면 한 번도 못 들어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어머니에게서 인간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니면 감정은 있지만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다.
천주교를 믿으셨던 시어머님은 성경을 수백 번 필사하며 마음을 다스리셨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꽃다운 나이를 집안에서 아이들과 보내야만 했다.
감정 표출이 서툰 이유는 오랜 시간 자신의 감정을 갈고닦아서였을까.
그런 시어머니에게 남편은 자랑스럽고, 잘난 아들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특별한 존재였고,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잘난 아들이 손에 물을 묻히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남편은 대학 시절 그 흔한 아르바이트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남자는 자고로 지갑이 두둑해야 하고, 체면을 구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시아버지 셨기에,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남편은 항상 용돈을 두둑이 받았고, 그래서 그는 경제적인 부족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부잣집 아들은 아니었지만, 항상 수중에 돈이 넉넉했고, 사랑과 정을 나누는 집안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가족으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그렇게 남편의 자아상은 비뚤어져 있었다.
자신은 신과 같은 존재라는 말을 농담처럼 했지만, 이제 와 보면 남편은 곧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 될 것처럼 항상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남편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로 인해 곧 큰 수익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푼돈을 벌기 위한 다른 일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살림살이가 그렇게 힘들어졌지만, 그에게서 다른 일을 해보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생계보다는 자신의 일과 자신감이 더 중요한 그를 바라보면서, 온 가족이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돈을 벌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