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방에 커피?.. 가 아니고 케이크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각자의 일상에 치여 자주 보진 못해도,
마음만큼은 여전히 끈끈한 사이.
이번엔 다들 우연히 시간이 맞아,
여름 한가운데로 함께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대부도.
우리는 다 같이 장을 본 뒤,
두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펜션으로 향했다.
고기, 라면, 안주, 음료,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산 간식들까지.
바구니는 가득했고, 마음도 그만큼 들떠 있었다.
펜션에 도착하자,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거실에 퍼져 앉아 수다를 떨고, 과자를 뜯고,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소소한 여름을 느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2층에 있던 친구가 다급하게 말했다.
“야야, 너 가방에 커피 쏟은 것 같아!!”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짜 내 가방인가 싶어
뭐라도 닦아야 하나 하며 다급하게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작은 풍선들과 초가 꽂힌 케이크가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익숙한 웃음소리.
서프라이즈였다.
말도 없이 조용히 준비해 준 이 순간이
그 어떤 생일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감동이었고,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게 좋았다.
그날 밤,
우리는 본격적으로 고기를 굽고 요리를 시작했다.
냉장고가 비어 가는 만큼 대화는 더 풍성해졌고
잔은 수시로 채워졌다.
그러던 중, 누군가 라면을 꺼냈다.
다들 솔깃해하면서도
표정엔 묘한 죄책감이 묻어 있었다.
왜냐면,
그 당시 우리 중 몇몇은 운동에 진심이었다.
“이거 먹으면 바로 살로 간다.”
“그냥 먹긴 좀 그렇지 않아?”
“스쿼트라도 하고 먹자.”
그렇게 거실 한가운데에서
갑작스럽게 스쿼트가 시작됐다.
술기운은 올라오고 있었지만
자세만큼은 이상하게 또 정확했다.
우리는 말없이 20개를 채웠다.
운동 안 하던 친구들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딱 한 마디 했다.
“쟤들 진짜 제정신 아니야.”
물도 안 건네고, 말없이 구경만 하던 그 태도에
우리는 스쿼트보다 웃음 참는 게 더 힘들었다.
그렇게 진심으로 운동을 한 뒤,
우리는 라면을 끓였고
한 젓가락도 남김없이 해치웠다.
그 밤은 그렇게 깊어졌다.
소란스럽고, 웃기고, 따뜻했다.
다음 날 아침.
모두가 정신없이 일어났고,
부스스한 얼굴로 조용히 짐을 챙겼다.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청소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펜션을 빠져나와 서울에 도착한 우리는
근처 식당에 들어가 말도 없이 감자탕을 해치웠다.
그 시원한 국물 덕분에
전날의 흔적들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별다른 인사 없이 흩어졌다.
그냥 “가” 한 마디에 각자 길을 걸었지만
서로의 마음은 꽤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생일이라는 하루가,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고기 굽고, 웃고, 라면 끓이고, 스쿼트한 밤.
소란스럽고 따뜻했던 대부도의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