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 천천히 돌아오는 마음
셋째 날 아침,
몸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감기처럼 아프다기보단
기운이 빠지고, 어지러웠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났다.
아빠는 이미 바닷가로 낚시를 나가 계셨고
엄마는 묵묵히 움직이시며 나를 살폈다.
그날의 공기는 조용했다.
서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몸 상태나 기분 같은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점심 무렵,
엄마와 함께 바닷가로 나갔다.
돗자리를 펴고 나는 눕듯이 앉았고
엄마는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멀리 아빠는 모래 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채 가만히 계셨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강아지가 몇 번이나 다가왔다.
나는 어지러운 몸을 일으키며 당황해했고
엄마는 별말 없이 그런 나를 바라보셨다.
말이 없던 순간들이
묘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엄마는 나랑 있다가
잠시 아빠가 낚시하는 곳에도 다녀오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셨다.
몸 상태는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여행인데’ 싶은 마음에
기운을 조금 더 내보기로 했다.
저녁이 되기 전,
우리는 시간도 비우고, 기분도 전환할 겸
근처에 있는 제빵소에 들렀다.
조용한 가게 안,
우리는 딸기우유와 빵을 골라 창가 자리에 앉았다.
버터 향이 은근히 퍼지는 공간,
적당히 따뜻하고, 말도 없이 편안한 시간이었다.
밖을 보니
하늘이 천천히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예정에도 없던 노을 구경이었지만
그날 본 노을은 여행 내내 본 풍경 중
가장 예뻤다.
그 노을을 끝으로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졌고,
우리는 그 빛을 따라
수목원으로 향했다.
밤이 되어야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그곳은
형형색색의 불빛들로 가득했다.
나무 사이를 따라 걷는 길마다
작은 조명들이 반짝였고,
그 속을 걷는 우리도 마치
한 장면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불빛이 반짝이는 길을 따라 걷고
사진도 찍고, 조용히 구경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숙소로 돌아온 뒤
사온 게, 회, 라면…
그 어떤 것도 입에 대지 못하고
나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회사 단체 카톡방이 요란했다.
여러 명이 독감에 걸렸다는 이야기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고
결국 나도 독감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부모님은 괜찮으셨고
우리는 계획보다 조금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여행이었다.
조용한 바다와 고요한 시간,
함께 있어서 괜찮았던 날들.
그 기억은
몸이 가라앉았던 날의 마음과 함께
차분히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