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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없고 추억만 쌓임

웃다 보니 벌써 체크아웃

by 소소한 여행가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첫가을 여행.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네 명이 모이면 여전히 웃음이 많다.


우리는 아침 일찍 만나

춘천인지 가평인지 모를 그 어딘가로 향했다.

근처 식당에서 닭갈비를 시키고

잣막걸리도 함께 주문했다.

막걸리 특유의 달큼함과

잣의 고소한 향이 어쩐지 잘 어울렸다.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우리는 배를 타고 남이섬으로 들어갔다.


계절은 초가을.

한낮엔 볕이 따갑고

그늘은 선선했다.

섬 안의 나무들은 아직 푸르렀지만

어딘가 모르게 바람이 달라져 있었다.


이곳저곳을 걸으며

사진도 찍고, 카페에도 들렀다.

별 얘기가 없어도 계속 웃음이 나왔고,

그건 우리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하루가 저물기 전,

픽업 차량이 숙소까지 데리러 와 주었다.

숙소는 외진 곳이라

들어가기 전에 미리 장을 봤고,

그 덕에 도착하자마자

요리를 하고, 술도 따르고,

쉴 새 없이 수다를 떨 수 있었다.


한참 떠들다 보니

누군가 갑자기 “야, 라면국물!” 하고 외쳤다.

술에 취한 채 데워두고 까먹었던 그 냄비는

이미 바닥이 바삭하게 눌어붙기 직전이었다.

부랴부랴 불을 끄고 나니

국물은 거의 사라져 있었고

남은 건 탄내 섞인 침묵이었다.


“이거 먹으면 죽겠는걸.”

누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우리는 동시에 빵 터졌다.

정신은 점점 흐려졌지만

웃음만큼은 또렷했다.


밤은 순식간에 깊어졌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누구 하나 먼저 자겠다는 말도 없이

그저 아쉬움을 안은 채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다시 차를 타고 가평역 근처로 나왔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다음엔 더 길게 놀자”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초가을의 하루 반나절.

남이섬, 잣막걸리, 고등학교 친구들.

그 조합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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