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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P들의 무계획 여행 2탄

여수 밤바다를 향해서

by 소소한 여행가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려는데, 물이 얼음장 같았다. 보일러를 잘못 눌렀는지, 아니면 아예 켜지 못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덜덜 떨며 샤워를 끝내고 화장을 하려니 립스틱마저 두고 온 게 생각났다. 결국 아이섀도우로 대충 대신 바르고, 우당탕탕 우리의 무계획 여행 둘째 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숙소를 예약할 때는 미처 생각 못했는데, 너무 안쪽에 있다 보니 캐리어를 끌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한 시간은 걸어야 했다. 막막해하던 우리에게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제가 벌교 가는 길인데, 버스 타는 데까지 내려드릴까요?” 덕분에 편하게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우리는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버스를 타고 순천역 근처로 가는 동안 허기가 몰려왔다. 검색해 보니 순천에는 한정식 집이 많았다. 친구랑 웨이팅이 조금 있더라도 들어가기로 했는데, 상 위에 음식이 하나둘 차려지더니 어느새 진수성찬이 되었다. 반찬만으로도 배가 부를 만큼 가짓수가 많았다. 한입씩 먹으면서도 행복해지는, 정말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식사 후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 레트로 밀크티 카페에 갔다. 유리 우유병 같은 옛날 병에 담겨 나온 밀크티는 보기만 해도 신기했고, 맛도 진했다.


순천역 앞에서는 누군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기차 시간이 다가와, 우리는 여수를 향해 몸을 실었다.

여수에 도착했지만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 사장님이 나타나지 않은 것. 전화도 받지 않고,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결국 세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행은 무계획이지만, 이 정도는 살짝 고통이었다.


짐을 풀고 향한 곳은 아르떼뮤지엄. 빛과 음악이 가득한 전시관에서 우리는 사진을 잔뜩 찍었다. 현실보다 더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그렇게 해가 지고, 드디어 버스커버스커 노래로만 듣던 여수 밤바다를 보러 케이블카에 올랐다. 케이블카 위에서 돼지빵과 바나나우유를 나눠 먹으며 “이게 어른이다”라며 웃었다. 아래로 펼쳐진 여수의 불빛은 노래보다 더 아름다웠다.

내려온 뒤엔 타코야끼와 소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소주가 모자란 것 같아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미 어두워진 거리는 괜히 무서웠다. 가로등 불빛도 드물고 신호등마저 꺼져 있어서, 순간 미국 영화 속 뒷골목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겁을 달래려 괜히 사진을 찍고, 서로를 놀리며 한참을 웃었다.


잔뜩 웃고, 잔뜩 마시고, 잔뜩 취한 하루였다. 여수의 밤바다만큼 반짝였던 우리의 둘째 날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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