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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P들의 무계획 여행 3탄

돌아오는 길 위에서

by 소소한 여행가

전날 과음 탓인지 아침부터 속이 편치 않았다. 원래는 여수에 왔으니 간장게장을 꼭 먹고 싶었지만, 속이 도저히 버텨주지 않았다. 결국 아침 일찍 문을 연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식당 문을 열자 뜨끈한 국물 냄새가 먼저 반겼다. 커다란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다대기가 풀어진 붉은 국물 위로 파가 둥둥 떠 있었다.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칼칼하면서도 진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속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의 피로가 국물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말도 없이 허겁지겁 국밥을 마시듯 들이켰다. 그러다 친구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이제야 속이 풀리네.”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간장게장보다 이게 맞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기차 시간까지 애매하게 여유가 남았다. “뭐 하지?” 고민하던 순간, 창밖으로 갑자기 빗줄기가 쏟아졌다. 우리는 비를 피해 맞은편 카페로 들어갔다. 이른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었고, 커피 향만 가득한 고요한 공간이 우리를 반겼다. 창밖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흘러내렸고, 바깥의 회색 풍경과는 달리 카페 안은 따뜻했다.


한쪽에는 체험용 모자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괜히 하나씩 집어 써봤다.

“야, 움직이는 통닭 모자 완전 니 거다.”

친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별것 아닌 순간이지만 여행의 마지막을 더 기억에 남게 해 줬다.


역으로 돌아와 기차에 올랐다. 창밖 풍경은 떠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마음은 달랐다. 비에 젖은 바다, 논밭 위로 드리운 회색 하늘을 보며 묘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친구가 창밖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계획 좀 짤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다음에는 짜자. 근데 우리가 할까?”

둘 다 동시에 피식 웃었다.


출발한 지는 며칠 되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은 이상하게 더 짧게 느껴졌다. 처음 출발할 때와 같은 자리로 돌아왔지만, 마음속엔 웃음과 추억이 한가득 남아 있었다. 친구와 함께라면, 무계획조차 특별해진다는 걸 이번 여행이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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