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점심, 완벽한 저녁
우리는 매년 추석이면 여행을 간다.
명절을 명절답지 않게 보내는 게
어느새 우리 가족만의 루틴이 되었다.
이번엔 충남 태안의 안면도로 향했다.
부모님과 나, 셋이서 떠난 3박 4일.
9월의 바닷가는 선선했지만 춥지는 않았고
가볍게 걸치기 좋은 날씨였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건 점심 먹기였다.
이번엔 엄마가 직접 맛집을 찾아보셨다.
평소엔 아빠가 골랐고
엄마는 “나는 몰라, 알아서 해~” 쪽이었는데
이번엔 스스로 검색도 해보고 평점도 따져보시더니
“여기가 괜찮대!” 하고 데려가신 곳이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건 얼큰하고 푸짐한 게국지였다.
하지만 막상 나온 건
국물은 있지만 건더기가 묵은지뿐인
허전한 구성.
게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아빠는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고,
나는 슬쩍 엄마를 바라봤다.
“… 여기 괜찮다더니?”
엄마는 민망한 듯 웃으면서도
“리뷰에 다들 맛있다 그랬다니까?”
하시며 반찬을 집었다.
우리는 말없이 웃고,
그냥 그렇게 첫 끼니를 넘겼다.
식사는 살짝 아쉬웠지만
여행의 공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숙소는 바닷가 바로 앞.
창문을 열자 짭조름한 바람이 밀려들었고,
우리는 잠깐 쉬다 바다 쪽으로 나갔다.
그날의 하늘은 두 번 예뻤다.
하나는 오후의 짙고 깊은 파란 하늘,
다른 하나는 해가 지며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
모래밭엔 발자국이 촘촘했고
갯벌엔 조개 잡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바다를 따라 걸었고
그 조용한 시간이 좋았다.
저녁엔 회를 포장해 와서 숙소 테라스에서 먹었다.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담긴 회,
초장, 상추, 깻잎, 그리고 시원하게 식힌 소주.
테이블은 단출했지만
분위기는 괜히 근사했다.
아빠가 잔을 채우고,
엄마는 상추에 회를 싸며 “회가 진짜 신선하다” 하셨다.
나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이런 거, 매년 해도 좋겠다”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밤이 되자 우리는 작은 폭죽을 들고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불꽃이 하늘로 피어오르자
서로 “예쁘다, 진짜 예쁘다”는 말이 연달아 나왔다.
엄마는 연기를 피해 한 걸음씩 물러나면서도
“이거 진짜 잘 샀다~” 하셨고,
나는 하늘을 향해 핸드폰 셔터를 눌렀다.
그 짧은 불빛이 터질 때마다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다.
다음 날은 근처에서 열리는 꽃 축제에 들렀다.
들판을 가득 메운 꽃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고
엄마는 한참을 꽃을 찍으셨다.
아빠는 멀찍이 뒤에서 “다 찍었어~?” 하면서도
느린 걸음으로 우리를 따라왔다.
그리고 점심.
전날 실패한 게국지의 아쉬움을
드디어 되갚을 차례였다.
이번엔 제대로 된 곳이었다.
커다란 게가 통째로 들어간 진한 국물,
그 옆엔 바삭하게 구워진 고등어가 놓였다.
엄마는 “이건 진짜다!” 하시며 크게 한입.
아빠는 두 그릇째 밥을 퍼 담았고
나는 이게 우리가 원했던 점심이었다는 걸
한 숟갈에 느꼈다.
그제야
이 여행이 정말 시작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