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티게 한 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순간들
5월의 봄, 따사로운 어느 날.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새벽부터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전까지 나는 산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등산은 그저 힘들고, 올라가도 다시 내려와야 하는 일.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산에 오르고 싶었다.
이 공허함을, 이 빈 마음을…
그냥 한 번은 넘어보고 싶었다.
검은 운동복에
등산화도 아닌 평소 신던 운동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
서서히 욱신거리기 시작한 다리,
‘왜 올라온 거지’라는 생각이 수십 번 들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정상에 닿은 그 순간,
나는 조용히 말했다.
“아, 살 것 같다.”
누구에게 들려주려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하산을 하고 나니
허기가 밀려왔다.
감자전, 회덮밥, 감자옹심이…
땀 흘린 뒤 먹는 밥은 언제나 그렇듯,
이유 없이 눈물 나게 맛있다.
속이 든든해지고 나서
나는 바닷가로 향했다.
아무 말 없이 바다 앞에 앉아
그냥 멍하니, 멍하니 있었다.
잔잔한 물결, 따뜻한 햇살,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
그날은 참, 괜찮았다.
그냥, 그런 하루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 취미에는 등산이 하나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