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미제
공원 외변에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산책로 왼쪽으로는 공원이 시작되었고 오른쪽으로는 수십 대의 자동차가 쉬지도 않고 차도를 달리고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걸으면 자연과 인공을 구분 짓는 경계면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산책로의 지면은 각기 다른 색을 가진 3가지 벽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끔 벤치와 심겨진 나무가 산책로의 다채로움을 더했는데, 인공적인 벽돌, 벤치와 자연적인 나무, 돌, 흙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경계면으로서 산책로의 모습으로는 퍽 어울렸다.
딱히 힘들지는 않았으나 갑자기 무기력해져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대로 벤치에 앉은 채 초점 없는 시선을 지면에 떨구었다. 벽돌 무늬 난 작은 흙 구멍에서 개미가 나왔다. 개미는 이 산책로를 종횡무진 나다녔다. 나의 시선은 개미를 따라갔다. 개미는 작은 돌, 거의 모래에 암석을 들었다. 겉모습은 그랬다. 그것이 암석인지, 누군가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인지, 습기에 의해 응집된 흙인지는 알 수 없었다. 편의상 암석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개미는 그것을 등에 지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모래에 가까운 암석이라고 했지만, 이 개미에게는 벅찰 만큼 큰 것이었다. 이 암석은 개미보다 컸다. 그것을 등에 진 개미의 모습을 사선이 아니라 수직으로 내려다봤다면 개미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개미는 개의치 않고 그 무게를 짊어진 채. 무심결에 어쩌면 저 개미가 나보다 나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보다 나은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선은 계속 개미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개미는 부단히 움직였지만, 벤치에 앉아서도 그 움직임을 볼 수 있을 만큼 개미의 걸음이란 하찮은 것이었다. 또 묵묵히 그 무게를 짊어지고 간다지만 벅차긴 했는지, 가끔 중심을 잃는지 휘청거리기도 했고,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인간의 관점에서야 무게에 힘겨워하는 모습이지, 개미의 관점에서는 다른 의미가 있을지도 몰랐다.
어느 순간 개미는 이 자리에서 잘 보이지 않은 만큼 먼 곳까지 갔다. 몸을 일으켰다. 마치, 애완동물을 산책시키는 것처럼 개미와 보폭을 맞추었다. 나의 한걸음이 개미에게는 10걸음, 50걸음, 아니 100걸음이었다. 나는 한 걸음을 옮겼다가 개미를 기다렸다가, 한 걸음을 옮겼다가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몇 걸음을 디뎠을까? 몇분이 지났을까? 벤치가 보였다. 전방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다시 개미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개미는 여전히 힘겨워 보였다. 그럼에도 계속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나아갔다. 그 무게를 짊어진 채. 이 개미의 모습을 보니, 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는 인간뿐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기력한 나보다, 잉여 같은 삶을 사는 인간보다 훨씬 노력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개미의 목적지는 어딜까? 개미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동기를 가지고 있을까? 개미도 우리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개미도 이 과정에 괴로움을 느끼고 힘들어할까? 개미도 이 일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고뇌할까? 개미도 자신에게 짊어진 이 짐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 개미도 자신이 이룬 어떤 일에 성취감을 느껴 즐거워하다가 다시 허무함에 빠지기를 반복할까?
개미를 중심에 둔 장면을 배경으로 쓸데없는 공상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인지했지만, 여전히 신경은 개미로 쏠려 있었다. 개미는 지금까지 지켜본 모습 그대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선을 옮기지는 않았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개미다!”
아이의 큰 목소리와 ‘개미’라는 단어가 나의 집착스런 관찰을 방해했다. 10살이 조금 안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3명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디? 어디?”
“여기 와 봐! 거기서 보면 개미가 들고 있는 돌 때문에 개미가 안 보여.”
“어 진짜네!”
“에잇!”
그중 한 남자아이가 개미를 밟았다. 나머지 아이들도 즐겁다는 듯 웃어댔다. 그 후로 남자아이들은 떠났다. 남자아이가 밟고 지나간 곳에는 개미의 시체가 으깨져 있었다. 그 시체 옆으로 개미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가 주인을 잃었다는 고독함을 나타내듯 외로이 방치되어 있었다. 잠깐 개미를 바라보면서 애착이 생겼었다. 자연스레 개미에 대한 동정이 일었지만, 딱히 저 아이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저 아이의 미래도 다를 게 없을 테니까.
인간은 스스로 저 개미와는 다르다고 믿는다. 신의 자녀라니, 고상한 이념이니, 발전된 기술이니, 자연을 지배하니, 그런 소리를 해댄다. 그런데 인간은 망각한 듯하다. 개미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그것들이, 결국, 인간을 저 개미와 같게 만든다는 사실을. 세상 어딘가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울리는 총성이 들린다, 도덕에 의해 죽음이 선포된다, 저승을 향하는 자동차가 운행된다, 자연의 보복에 생명이 수몰된다.
인간 삶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세상, 신, 운명, 하늘, 우주,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이렇게나 하찮은 것이다. 저 개미의 여정처럼.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의 목숨이란 이렇게나 가벼운 것이다. 아이가 저 개미를 밟아 죽인 것처럼. 부조리하다고 느낄 수는 있겠으나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허무한 심정으로 벤치에서 일어나 개미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시체 옆에 놓인 삶의 무게를 들었다. 개미에게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참 가볍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돌멩이를 힘껏 던졌다. 돌멩이는 계속 날아가더니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 번의 팔짓에 돌멩이는 무척 멀리 나아갔다. 개미는 1달을 줄곧 옮겨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만큼.
안 그래도 보기 힘들었던 개미의 사체는 일어서서 보니 훨씬 더 흐릿해졌다. 이미 그 사체는 개미의 형체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내가, 이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그 존재조차 몰랐을 정도로 내가 떠나고 나면 아무도 이 개미를 아는 이가 없겠지. 밟히고 밟혀 완전히 무의 존재로, 마치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 입자처럼 사라지게 되겠지.
신의 기분이 이런 걸까? 사체를 뒤로한 채 다시 걸었다. 가슴 한구석에 희미하게, 그 존재를 자각하기도 어려울 만큼 미세한 같잖음이 올라왔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