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풍자
기울어져 서 있어야 하는 존재의 숙명적 고통을 아시오? 당연히 모를 것이오. 이 세계에서 그런 숙명을 부여받은 존재는 나 말고 없을 테니. 뭐라고 했소? 나 말고도 그런 존재가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소. 나와 같은 숙명을 부여받은 존재가 있는 것이니.
우선 나를 소개하겠소. 나는 이탈리아의 한 지역에 세워진 탑이오. 난 탄생 과정부터 기울여져, 서 있어야 하는 숙명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소. 처음 나의 몸이 만들어질 때, 높이가 쌓이면서 난 기울어 가기 시작했소.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소. 나의 창조자들은 원래부터 나에게 그런 숙명을 부여하기를 원했는지, 아니면 그들의 실수인지, 혹 시간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존재자의 장난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나의 창조자들은 이미 죽고 없소.
그렇게 난 탄생했을 때부터 기울어져 서있어야 했소. 심지어, 나의 창조자들은 그런 숙명을 극복하고자 했는지 나의 몸을 휘어지게 만들었소. 기울인 채로 서 있는 것도 벅찬데, 거기에다 휘어져 있으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오. 그렇게 난 아주 긴 시간 동안 이 고통스러운 자세를 유지해야 했소.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으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힘에 부쳐왔소. 결국, 난 점점 더 기울어 갔고 어느 순간에는 쓰러지기 직전에 이르렀소.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인간들이 나를 바로 세우기 시작했소. 드디어, 나도 숙명에 의해 부여된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소. 그런데 이 인간들은 나를 제대로 세워주지 않았소. 조금씩 제대로 된 자세를 찾아가고는 있으나, 내가 만들어진 이래 기울어져 있었던 시간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겨우 바로 설 수 있을 것 같소. 이왕 세워주는 거 좀 빨리 세워주면 좋을 텐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 내가 제대로 설 때쯤이면, 지금의 인간들은 그 모습을 보지도 못할 텐데.
여기서 가만 인간들을 지켜보면 참 귀엽소.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내 주변에서 나를 보고는 깔깔 웃고, 얘기를 나누고, 놀란 표정을 짓고, 사진을 찍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소. 몇몇 인간들은 나를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걸 낙으로 삼는 것 같소. 하도 많은 인간들이 내 몸을 밟아서 내 몸에는 인간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소. 가끔은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부럽소. 나는 해가 진 후 빛이 전혀 없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을 빛 속에서, 하루 종일 느낄 수 있을 테니.
또다시 해가 밝았소. 곧 있으면 수많은 인간 무리가 나를 찾아올 것이오. 나는 이만 말을 마치고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소. 내가 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나뿐이오. 인간을 보면 곧바로 설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인간들이 많소. 왜 그러는지 모르겠소. 누구는 곧바로 서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소. 그러니 허리를 꼿꼿이 펴시오.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하시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