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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시대 풍자

by DEN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동물의 신체에서 다리라고 한다면 그 개체의 이동을 담당하는 신체 부위입니다. 인간의 다리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인간이 다리가 있음에도 다리가 아닌, 다른 존재에 이동을 위탁하여 생활합니다. 그 다른 존재는 다름 아닌 저입니다.

전 지금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혹사당한 지 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어떤 이도 조치해 주거나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저, 관성대로 저를 이용할 뿐이죠. 저를 이용하는 것 자체에는 불만이 없습니다. 제 탄생과 존재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저를 이용하여, 편의를 느끼고 더 나은 생활을 할 때면 저는 자부심을 느끼고 보람찬 기분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저도 좀 쉬고 싶습니다. 쉬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노동하고 싶습니다.

아니 여러분, 그 두 다리는 장식입니까? 압니다. 신체적으로 다리가 불편한 분도 있고, 조금 높은 층을 올라가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 그런 분들을 위해, 그런 상황에 쓰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그런 경우에도 불만을 품을 만큼 배은망덕한 존재는 아닙니다.

제가 불만을 토로하고 싶은 내용은 이와 같습니다. 도대체 1층, 2층을 올라가는데 왜 자꾸 저를 이용하십니까? 그것도 혼자서. 뭐 여러 명이 같이 오시는 건 그렇다고 치겠습니다. 두 다리 건장한 청년께서 1층, 2층을 오르는데 왜 자꾸 절 이용하십니까?

그리고 시간은 금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제가 건장한 청년 한 분을 모시고 2개의 층을 올려드리기 위해 8층에서 지하 1층까지 내려와야겠습니까? 계단으로 가셨으면 내려올 시간에 진작에 도착하는 거 아닙니까?

아 그리고 계단, 말이 나온 김에 제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가족이자,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지고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동지인 계단을 대변해서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그 친구는 요즘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과거에 제가 태어나기 전에 많은 사람이 그 친구와 함께하고, 이용하여 자긍심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난 이래, 계단을 찾는 사람은 급격히 줄었습니다. 계단을 없애버리고 저와 같은 존재를 하나 더 만드는 게 훨씬 더 유용할 실정입니다.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 외로움을 겪고 있고 동시에 자신의 존재가 가치 없고, 쓸모없게 여겨져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제가 위로를 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계단 친구 이야기는 나중에 또다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또 한 가지 고충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왜 자꾸 저의 한 부분만 반복적으로 누르십니까? 저에게는 수많은 버튼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 수많은 버튼이 쓸모가 없을 정도로 한 버튼만 누르십니다. 조금 기다리시면 안 됩니까? 그리고 급하시면 말씀드린 대로 계단 친구를 이용하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 번 좀 누르시면 안 됩니까? 한 번만 누르셔도 전 당신의 의도를 알아듣고 제가 해야 할 일을 이행합니다. 다른 버튼을 누르실 때는 한 번만 누르시더니, 왜 그 한 버튼만큼은 한 번, 두 번, 세 번, 많게는 다섯 번씩이나 누르십니까? 그럴 때면 그 버튼이 있는 부분이 쑤십니다. 일과를 마치면 항상 그 부분만 마사지를 합니다. 심할 때는 연고를 바르기도 합니다.

맞다. 버튼 이야기가 나와서 한 가지만 첨언하겠습니다. 아이들 교육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저한테 있는 수많은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댑니다. 그럴 때마다 그 입력값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다려야 하는지, 자체적인 판단하에 멈춰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야, 너네 내 나이가 몇 살인지는 알아? 나보다 어린 게 자꾸 나를 가지고 장난쳐? 혼나볼래?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네…

아,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장난칠 때를 떠올리니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서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염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이들을 가두어버린다던가, 전원을 꺼서 놀라게 한다거나 그런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앗, 누군가 또 저를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1~2개의 층을 올라가는 한 명의

건장한 청년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고 떠나겠습니다.

저를 좀 적당히 이용하십시오. 계단 좀 이용하십시오. 좀 걸어 다니십시오. 그게 건강에도 좋고 저에게도 좋고, 계단에도 좋고, 지구에도 좋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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