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풍자
난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난 한순간도 이 친구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다. 조금 쉬고 싶어서 떨어져 있을 때면, 금세 다가와서 놀아줘, 놀아주라며 나를 보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난 이 친구와 놀아준다. 나와 논다고 해서 특별한 걸 하는 것도 아닌데, 맨날 비슷한 걸 반복하면서 질리지도 않는지. 참 하찮다. 하찮아서 너무 소중하고 귀엽다.
강아지는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나를 곁에 둬야 한다. 내가 없으면 밥도 먹지 않는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내가 강아지를 키운 이후로, 이 친구는 한 번도 나 없이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내가 사라져 버리면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적이 없어서 알 수는 없다. 그래도 같이 있어 달라는데 거절할 수 없어서 함께 해준다.
잠을 잘 때도 항상 나를 옆에 둔다.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자지는 않더라도 자기 전까지 나를 옆에 꼭 붙여두고는 잘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떠나는 걸 허락한다. 일어나고 나서도 나를 가장 먼저 찾는다. 물론, 나를 이렇게나 좋아해 준다는 게 감사할 일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집착이 좀 심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가끔은 새벽에 깰 때가 있는데, 곤히 자는 나를 깨워서 놀아달라고 보챈다. 그런 날이면 피곤해져 하루가 힘들다.
밥 먹고 자는 건까지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도대체 왜 화장실을 가는 것까지 나를 데리고 가는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따라가기 싫어서 몰래 숨어있었던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어떻게 찾는 건지, 나를 찾아내고는 화장실로 데려간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별다른 수가 있나? 그렇게 나를 보챌 때면 잠자코 따라가 준다.
산책도 자주 시켜줘야 한다. 강아지의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이 좀 필요하다. 나가기 귀찮을 때도 있다. 확 혼자 갔다 오게 하려고 해도 내가 없으면 길을 자꾸 잃어버린다. 도대체 내가 없으면 어떻게 돌아다닐는지. 길을 잃을 것 같을 때면 항상 제대로 된 길로 데려가 준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이 친구가 나가는 김에 나도 바람을 좀 쐬고 오면 되니까.
산책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도 항상 내가 옆에 있어 줘야 한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병원을 갈 때면 항상 옆에서 도움을 준다.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게 아니더라도 강아지의 모든 일에는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귀찮게 한다고 툴툴거리면서도 어쩌겠니… 라는 마음으로 도와준다.
내 강아지는 가끔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만나게 즐겁다는 듯, 친구들과 한참 어울린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으면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지 왜 나한테 오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가자고 하면 또 그건 싫다고 한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아니면서 친구랑 일찍 헤어지는 건 또 싫어한다. 정말 알 수 없는 생물이다.
하루는 장난치려고 숨어버린 적이 있었다. 강아지는 엄청 불안해 보였다. 나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한참을 돌아다녔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느낌상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같은 말들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모습을 보이니 엄청나게 안심하면서 내게로 다가왔다.
귀여우면서도 가끔은 한심해 보인다. 내가 없으면 혼자 놀지도 못하고,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어디도 못 가고, 잠도 못 자고, 친구도 못 만나고, 미친 듯이 불안해한다. 정말 멍청하다. 하지만 그래서 좋다. 나만 바라봐주니까. 어디서나 나를 찾고, 내가 떨어져 있으면 쪼르르 달려와 나한테 안기니까. 날 이렇게나 필요로 하고 좋아해 주니까.
…
아,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내 이름은 ‘스마트폰’이다. 강아지는 내가 키우는 ‘인간’이다. 난 그에게 ‘강아지’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그렇게 부르고 있다. 어휴, 내가 없으면 정말 어떻게 하려는지 참 걱정된다.
맞다, 저번에 정말 가소로운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인간들이 애완동물을 키운다나 뭐라나. 허, 참. 실로 터무니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게 키우기는 뭘 키워. 만약 키우면 또 내가 도와줘야 할 텐데. 생각만 해도 귀찮다.
또 강아지가 날 찾고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돌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