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자들

사생활 보호 위해 몇가지 바꾸어 적습니다. 기사님 존경합니다.

by 김인

"재미있을 것 같아서."

P의 눈이 가늘게 좁아지며 웃는다. 조금 밝다 싶은 청색 양복에 은은한 미색의 와이셔츠를 걸쳤다. 조용히 말을 거는 것처럼 세련된 차림이다.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느낌 좋게 노신사 정도로 스쳤겠다. 은발에는 윤기가 돌고 눈가 주름은 자연스럽다. 환갑이 되기까지 이 남자의 피부 역시 물결치듯 움직였겠고, 이제 보기좋은 포장지가 되어 조명처럼 강한 눈동자를 담아 내민다. 똑똑해 보일 뿐 아니라 준수한 남자다. 혈통. P의 여동생인 친구 영주 역시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선을 떼기 힘들 정도로 눈빛이 밝고 이목구비 뚜렷한 미인이었다. 걔도 아름답게 늙었겠지. 나는 용기를 끌어올려 P를 바라본다. 세월은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주어 이 남자를 온화하고 넉넉한 노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그 정도다. P는 젊었던 그때, 취재 나왔을 때처럼 날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답을 채근한다. 난 그때처럼 그의 눈이 부담스러워 또 고개를 숙인다.

이 남자와 처음 마주했던 때가 기억난다. 전생처럼 한참 전이다. 그때 흑발에 윤기가 돌던 P기자는 천연스럽게 친근했다. '영주 친구지? 얘기 많이 들었어.'라며 주스를 내밀었다. 내 모교에서 일어난 교직원 성범죄를 취재하고 싶어서 날 찾아왔다고 했다. 영주가 오빠를 경멸했기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피해자인 후배들에게 다리를 놓아주었다. 후배들은 공론화에 적극 찬성하며 세상이 자신들을 알아주었다고 감격했다. 우리는 한달이 넘게 적극적으로 취재에 협조했다. 그가 시킨대로 증거도 모았다. 그게 다다. 그는 우리가 내민 복사물과 플로피 디스크(참 오래 전이다)를 가지고 사라졌다. 기사도 나오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 그러더니 수십년 후 갑자기 나타나 해명 한마디 없이 모임에 끼워달라고.

사람은 변하기 힘들다. 서로 마주하던 분위기도 달라지지 않는다. 친구는 오빠 앞에선 물도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오빠가 친한 척을 해오기도 하고 자신이 친한 척을 하며 마음을 내기도 했었지만, 결국 자신만 우스워졌다면서 한국을 떠났다. 내가 오늘 나온 이유를 알았다. 영주가 그리웠다. 영주 오빠P는 내 인생에 없다. 빨리 끝내자.

"저, 재미같은 것 없어요. 아는 사람 몇명이서 조촐하게, 벌써 시작했어요. 자기 얘기를 하게 되니까 낯선 사람은 끼우지 않기로 약속하고 시작했구요."

동료들과 '자서전 쓰기'를 시작한 지 한달밖에 되지 않았다. 이 남자는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요구까지 할까.

그의 얇삭한 입술이 리듬을 타듯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나직한 음성이 타이르는 듯 부드럽다.

"연락처를 줘. 내가 얘기할께. 여기 공간도 많아. 회의실만 여덟개야. 전망 좋고, 서울이 다 내려다 보여."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요." 이 남자를 뭐라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호칭은 생략한다.

"너만 하는 것 아니잖아. 뭣보다, 자서전 책으로 낼 수도 있고 기사화도 뭐, 얼마든지."

P의 너스레에 내 머리는 우리가 담겨 있는 고층 유리빌딩을 떠올린다. 귀가 윙 울리는 엘레베이터를 타야 했다. 내 시선은 그를 둘러싼 널찍한 사무실을 향한다. 하얀 대리석으로 내장을 두른 사무실에는 에어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촐싹대거나 소란할 필요없는 묵직한 권력 그 자체다. 하지만 고문실로 날 안내한 비서는 바빠 보였다. 이 남자를 위해서 연료처럼 바쁘게 타고 있겠다. P가 궁둥이를 깊숙이 넣고 앉은 소파를 본다. 고색창연하다. 구불구불하게 깎아만든 나무 틀 안에 충전재를 채운 갈색 가죽이 뭉실하고 뚱뚱하다. 시쳇말로 박정희 때 사진으로 보던 맵시다. 그의 바로 뒤에 들어앉은 검은 유리로 만든 책상이나 바둑판 모양으로 봉제를 뜬 크림색 의자는 새침한 신세대로, 소파와는 한 세기나 차이가 나 보인다. 기억하는 물건이다. 인터넷 회사 CEO가 검은 머리 외국인같은 분위기로 저 제품을 배경삼아 인터뷰한 사진을 경제지에서 봤다. 자서전 쓰기를 함께 하는 동료가 알려주었다. '이탈리아 수입 가구야. 미니멀리즘 뭐라면서 카탈로그까지 흑백인데 그런 게 더 비싼 것 알지? 이게 먼지는 고사하고 지문만 묻어도 지저분해보이는데 산단 말야. 법인카드니까 아예 생각들이 없어.' 그는 회사에서 사내 연수를 외주로 돌리며 일하던 팀이 없어졌다. 연수원에서 환송 파티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자재과에서 퇴직하게 될 것 같다며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P는 태양처럼 내게 시선을 내리쪼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고개를 숙인 채 '저 책상, 제 친구가 수입한 거예요',하고 이 매끈한 노인에게 말하는 상상을 한다. 여기 갇힌 후로 목구멍이 답답했는데 처음으로 숨을 좀 쉬는 것 같다. 여유가 돌며 생각도 하게 된다. 가구의 부조화는 남자의 이율배반과 어울린다. 대체 기자가 왜 법무법인 고문으로 사는 거냐. P는 어린 시절 장학 퀴즈 기장원에 도전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법대에 갔지만 고시도 보지 않고 정치도 하지 않았고 기자를 선택했다. P가 부모를 설득했다. 법조인은 까딱 줄 잘못 서면 미관말직으로 끝나기 쉽상인데다가 자기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 분위기이고, 정치인은 좋아 보여도 평생 남의 눈치 보고 살아야 하는 직업인데, 기자는 말단 기자라도 스피커라 갑으로 산다는 설명이었다. 갑으로 살면 명예나 돈은 알아서 온다고,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서 내 친구는 오빠를 무서워했다. 그가 내게 자박자박 소리를 넣는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 나 바쁜 사람이야.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간을 낸 건데."

재미? 당신은 사는 게 재미있었어? 인생은 정신의 극장이다. 나와 동료들은 자서전을 쓰며 낭만적인 회고나 자기 애완에 빠지긴 커녕 한숨이 늘었다. 어느새 늙어버렸지만 다 늙지 않은 지금이라도 이제까지보다 잘 살고 싶어서, 새로이 노력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죽어가고 싶어서 시작했다. 새로운 미래를 낡은 몸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 오답노트, 역사책 참고하는 심정으로 과거를 적으며 반성하고 의미를 찾으며 나아가기로 했는데 모두 괴로워하고 있다. 살아온 이력에는 누구나 우울한 주머니 한두개씩 달려 있었고, 사오십대인 아직 대개 진행형이거나 악화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스스로 저지른 선택이 만든 인과응보와 잊고 싶어서 잊혀지지 않는 지저분한 각질이 손으로 적는 자서전 초안마다 후두둑 떨어졌다. 어린 시절의 무력함과 청년 시절의 어리석음과 장년 시절의 암울하리만치 절박한 생존. 어렸을 땐 부모의 불화나 성적 압박으로 자살한 친구들이 있었고 이 나이엔 어쩌다 불운을 집어들어 몰락한 친구의 자살과 우리의 외면으로 시든 사람들, 과로사한 동료들이 있다. 자서전에 적어야 할 것들은 적으면서 떠올랐다. 자신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만든,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들과 잊혀지면 안 되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자서전은 자책의 기록이자 자각의 기록이었다. 우리는 탄식이 늘었고 이제 침묵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중이었다. 혼자 보는 자서전이라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출판 운운할 계제가 아니다. 그런데 당신이 우리가 되겠다고.

하지만 이 남자 앞에서 나는 자서전을 적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자긍을 느낀다. 적어도 나와 동료들은 '내가 알고 내가 해냈고 내가 성공했다'는 협소한 자의식으로 사는 인간은 아니다. 고개를 든다.

"이제 가볼께요."

"그래. 생각해 봐. 식사는? 점심 같이 하지."

"약속 있어요."

"누군데."

"아들이요. 오랜만에 서울 왔으니까 만나려구요."

"같이 먹지 뭐, 그럼. 오라고 해. 차 보내줄까?"

"낯선 사람 어려워 해요."

"서로 알아두면 좋겠지. 걔도 사회생활 할 것 아니야?"

잠시 어두워졌던 그의 얼굴에 다시 노회한 미소가 돈다. 면상이 기름 종이를 깐 듯 반들반들하게 웃는다. 내 시선은 그 초상을 피해 테이블 위에 놓인 프린트물에서 멈춘다. '로펌 컨슈머 리포트'. 이젠 법조계도 영어 천국이구나. 법대 교과서는 한자가 가득했다. '전설한 바와 같이'가 앞에서 설명한 대로,라는 뜻이라고 친구에게 들은 기억이 난다. 달라진 것은 없겠다. 한자어에서 영어로 껍데기만 변태를 하듯 갈아끼웠겠지. 시류를 따라 뭐든 잘 갈아끼우는 인간들의 능란함이 희한한 활자로 표현되어 있었다. '오염되지 않은 문항과 조사'는 뭘까. 나는 가지런히 인쇄된 종이 위로 친구를 떠올렸다. 내 친구는 유연하고 자신만만한 오빠에 비해 늘 고민하고 허둥대는 자신이 초라해보인다고, 자신의 감정이 버겁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고민이 좋았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양심이 자극되었으니까. 오빠가 유명 기자로 이름을 날리고 언론상도 몇번 받고 하는 사이 친구는 외국에 나가 가족과, 정확히는 부모님 돌아가신 후 유일한 가족인 오빠와 절연을 했다. 나는 P가 후배들에게 했던 대로 끊기로 한다.

"안녕히계세요."

일어나 문 앞으로 걸어가는데 저음이 들린다.

"화가 나려고 하네."

"내세요."


닫고 나왔다. 빌딩 앞에서 바로 택시를 잡았다. 아들 만난다는 소리는 거짓말이었다. 나는 먼저 연락을 삼가는 것으로, 애착을 절제하는 것으로 다 자란 아이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기사님. 제가 기분이 좀 그래서요, 사십분 정도 드라이브할 수 있을까요? 한시까지 고속터미널 내려주시면 되구요."

"아이구, 예."

베이지색 야구 모자 아래 백발이 보인다. 여기도 노인이다. 구김이 역력한 연한 갈색 티셔츠 안에 든 투실투실한 몸은 부은 것처럼 보였고 피로한 기색이 전해진다. 작은 눈이 수줍게 빛나서 나는 안심이 된다.

"될까요?"

"그럼요. 저어기, 저 공원이랑 세브란스 병원 산책로로 돌께요. 거기 머리 식히기 괜찮아요."

"네네, 알아서 해주세요. 전문가인데 아시겠죠."

"음악을 좀 틀까요? 손님?"

"아뇨. 조용히 있고 싶어요. 물어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고맙지요. 자 출발합니다!"


과연 병원 뒤켠 숲길은 아름다웠다. 높이가 제각각인 수목이 비탈길마다 뭉텅이로 뻗어올라 늘어져 초록빛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 이런 곳이 있다니. 다채로운 잎새 모서리마다 볕이 반짝반짝하는 모습을 보며 장마 전이 가장 좋은 시절이라던, 외할머니 말씀이 기억났다.

"좋네요. 사람이 이렇게 없을까요."

"아유, 그 전공의 파업 때문에 확 줄었어요."

"아......"

"마누라가 여기서 간병 알바를 하거든요. 지금은 딸네 가서 애 봐주고 용돈 받아요."

"타격이 크시겠는데요."

"그렇죠. 근데,"

"네."

"왜 몇년 전에도 그 코로나 때 말요, 그때도 파업했었잖아. 그때 마누라가 기자를 만났거든요. 그땐 기사 안 쓰고 갑자기 요즘 기사를 쓰겠다대."

"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번 기사가 영. 예전에는 정부 책임이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의사한테 서운하시죠, 이러더라는 거야. 마누라가 기분이 이상해져서 기자한테 자기 얘긴 빼달리고 하니까 그건 안된다네?"

짐작이 갔다. 재료로 쓰고 말려는데 재료가 말을 하니까 싫었겠지.

"저, 아마 다 가명으로 나가니까요. 행여 기사로 나가더라도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가명이든 실명이든 여튼 자기 한 말이 원하지 않는 쪽으로 나가는 게 안되지요."

"......"

"죽을 때가 되면 그런 게 꺼림칙해요. 그렇게 끝나버리면, 그게 다 죄가 되더라구."

"아......"

"내가 아직 참, 손님한테 할 소리인 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전에 이 근처에서 신학기 데모가 있었어요. 택시로 병원 왔다가 학생을 봤었거든. 막 뛰어와, 태워달라는 거야. 저쪽에서 청바지입은 애들이 방패를 들고 쫓아오는데, 어휴. 정말 뭐 그런 놈들이 다 있어. 전경하고는 달랐어."

"백골단이요, 네."

"아시는구나. 손님도 대학 나왔구만. 여튼 저러다가 창유리 깨지지 싶어서 내가 내뺐거든. 근데 며칠 후에 신문에 사진이 그 학생 같은 거야. 전경한테 맞았다고, 영정 사진이......"

"저런." 1996년 노수석 열사. 아마도.

"그 사람인 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게 참...... 그래서 신문 구독도 하고 그 뭐냐, 독립 언론이라구 유투브도 보고. 나도 세상 돌아가는 것 알기라도 하려는데 지나간 일은 되돌이킬 수가 없지. 그때 태워줄 걸."

"어르신. 그 시위는 종로까지 가서 사고가 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분이 아닐 것 같아요. 오래 마음 불편하셨으니 어르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 아닐까요."

"아니요. 그 사람 아니었다고 해도 그 학생이 그놈들한테 맞았겠지. 난 도망갔고."

"......"

"죽을 때가 되면 알게 됩니다. 좋은 행동을 해야 좋은 사람이요. 이렇게 낯선 사람한테 하소연하는 게 나빠요. 나이값도 못하고 미안합니다. 자, 출발합니다."


기사님은 거스름돈을 받지 않으셨다. '버스 타는데 음료수 사 드셔야죠'하시면서 내게 반짝반짝하는 동전을 골라 내미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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