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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노래 , 들 얘기3

구등골에는 당산 할미바위가 있다.

by 하리

한 주일이 멀다 하고 당산을 올랐다. 힘겹더라도 건강 회복을 위해 한 운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봄에 코로나가 걸리면서 그만 멈춰졌다. 그 당산을 반년이 훨씬 지나서야 다시 올라갈 용기를 냈다.


마을 뒤로 둘러진 산은 대황산이다. 채 오백 고지가 못 되지만 일명 대황 당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때 당신을 모신 곳으로 아직도 당산 할미바위가 있다. 그 바위는 잔돌로 둘러싸여서 열란 무덤 같이도 보이고 마치 바가지를 쓰고 있는 듯하다. 그곳은 성주의 오래된 고을지에 의하면 조선시대 이전부터 지역에 가뭄이 길어지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농사는 물론 식수가 고갈될 정도가 되면 마을 사람뿐 아니라 고을 전체의 합심으로 기우제를 지냈단다. 살아 있는 돼지를 산꼭대기까지 몰고 가서 피를 당산 바위나 그 주변에 뿌리면 다 내려오기 전에 비가 왔다고 전한다. 그런 기우제도 근래는 아예 없어진 상태다.

결혼을 한 뒤, 대황산 아래 마을 주민이 되면서 수시로 듣던 얘기가 바로 당산에 모셔진 당산 할미 바위에 관해서였다. 기우제가 멈춰지고 마을 사람들은 그 대황 당산을 신성시하면서도 쉬 오르지 못하는 이유가 몸과 마음가짐을 깨끗하게 하고서 무언가 절실할 때에야 오를 수 있는 곳으로 여기다 보니 발걸음이 뜸해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당산에 관심이 간 것은 몸이 안 좋아지고 난 뒤였다. 처음 얼마간 갈등과 좌절을 경험하다 걷는 것이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집 주변과 들판을 걷다가 어느 땐가 산 입구까지 갔었다. 그런데 누군가 산소 사이로 걸어 다닌 흔적이 보였다.


그때 이후로 산 입구에서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십 분만 더 가보자, 조금만 더 가보자 한 것이 소나무가 가득한 산 중턱에까지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산은 짧은 등산을 한 뒤에 쉬고 오는 곳이 되어갔다. 소나무 아래에다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책을 읽거나 기도를 하다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다시 내려왔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기어이는 할미바위가 있는 곳을 다다를 수 있었다.

당산을 가는 길은 길이가 짧은 대신 경사도가 애법 있어 기어가다시피 해야 한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주르륵 미끄럼 타듯 하다 보니 몸이 조금씩 가벼워져 갔다. 어떤 날은 오전에 산에서 쉬고 오후에는 다른 볼일을 볼 수도 있었다. 몸이 조금씩 좋아지자 일주일에 한 번 가다가 횟수로 늘려가며 어떤 때는 산을 오르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나서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잡목으로 우거진 곳을 누가 다시 내었을까 궁금증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다가 낫을 들고 산을 오르는 분을 만나면서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그분도 지병이 생겼건만 병원을 아무리 다녀도 차도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당산 할미께 한번 빌어보란 어떤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서 혼자서 찾아다녔다고 하셨다.

몇 번인가를 길을 찾았지만 못 찾아서 직접 나무를 자르고 쓸면서 길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몸은 좋아지고 있었으며 근래는 매일 오르던 횟수를 줄여서 휴일에 한 번씩 온다고 말이다. 어쩌면 나와 비슷하게 몸이 아파서 그 이유로 길을 만들어갔고 그분의 숨은 노력 때문에 나 역시 건강 회복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오가는 길에 혼자서 노래도 부르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위로 오를수록 소나무가 많아서 기를 쓰고 정상을 향한다.

최근에 등산로로 개발한다고 산 중턱에 의자도 몇 있으며 발 딛는 자리마다 나무를 놓아서 오르기도 쉽다. 게다가 당산 할미 바위 근처에는 나무로 난간과 마루를 만들었다. 그것이 딱히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등산객들은 다리 펴고 쉴 수 있다.


코로나를 두 번이나 겪고도 다시 힘을 내어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하다. 어떤 날은 파김치 같은 몸으로 무얼 할까 갈등하다 산을 보면 마치 내게 올라오라 손짓하는 것 같다.

비록 산을 오가는 동안 몸의 기운을 돌게 하는 것일지라도 마치 당산 할미는 지금도 기도하고 계실 것 같은 느낌을 가끔 받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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