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꽃 한송이

또 올게요.

by 하리

밤기온은 차다지만 낮은 점점 풀려서 나무들도 새싹 틔울 준비가 한창일 때 성밖숲 또한 부산스럽다.

막 점심을 먹고 난 뒤였다.

"아까 왔던 사람입니다."

친구분을 앞세우며 선글라스 낀 아저씨께서 정보센터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처음 오시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음 모를뻔했다. 오전에는 두 분이었는데 바깥에 일행이 더 계셨다. 하긴 늘 사람 상대하면서도 눈썰미가 별로 없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성주를 대표하는 천연기념물인 수백 년 된 왕버들이 주인으로 터 잡고 있는 성밖숲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근무 중이었다.


단지 모양의 치마를 산 것은 어림잡아도 십 년쯤 되지 않을까 싶다. 짙은 밤색에다 누빔이라 얼른 보기에는 천연염색 같다.

하지만 이 원피스는 한창 유행하던 때에 모양만 흉내 낸 일반기성품이었다. 이후 부담 없이 겨울만 되면 손이 갈 줄 알았건만 유행이 바뀌는 통에 장롱 안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치마를 지난 초겨울 우연히 눈이 가서 몇 번 입다가 세탁 들어가기 전에 한번 더 입은 것이 오늘의 차림새였다.

한번 온 분이 또 다른 일행분을 모시고 다시 들어올 만치 구경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지만 봄기운이 조금씩 올라오는 이월의 마지막주 휴일이니 사람 발길이 잦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거니 했다.

"패션이 참 특이하십니다. 하하"

같이 오신 분께서 하신 첫인사였다.

그분은 정보센터를 다시 찾은 이유가 성밖숲에 대해 궁금해서가 아니요, 다리가 아파서 쉬려는 목적도 아닌 바로 내가 입고 있는 옷 때문이라고 하면서 크게 웃었다.

애초에 좋아하는 옷이라느니 한참 너스레를 떨고는 기어이 인정삿까지 찍고서야 다음 일정을 위해 나가셨다.


오늘 차림새가 그렇게 특이하나 싶어 사진으로 찍어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다.

아니, 그저 봄이 오는 소리 사이로 흰 웃음 한바탕 웃게 해 준 손님 덕분에 갑자기 모든 게 즐거워졌다.

그림자를 찍다가 유리벽을 보고 찍느라 나 역시 손님 없는 틈을 이용하여 호들갑을 떨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한 말 또한 귀에 쟁쟁거린다.

"좀 다니다가 다른 분 또 모시고 올게요."

명색이 문화관광해설사요, 글쓰기 좋아 끼적이는 사람으로서의 아는 바를 잘 전달해서 감동을 갖게 하는 본연의 목적대신 겨울통피스 입고 있는 모습을 다시 보러 왔다는 말이 싫지가 않았다. 그 손님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도 손 흔들며 웃어주었다.

2월 마지막 휴일을 그렇게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는 것만도 좋은데 다른 사람에게 웃음까지 줄 수 있어 살아 있음 만으로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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