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곳과 살아갈 곳 중 어디가 더 중요한지 와 같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순이 넘어서 문득 떠오른 질문이다.
날씨가 점점 따스해지면서 초여름이 가까워 올수록 몸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갖게 된다. 가끔 이전과는 달리 피로해소가 빠른 것 같아 혼잣소리를 한다.
'참말로 감사합니다.'
"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몇 사람이 태실 위로 올라왔다. 친구들이라 했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고 웃음소리도 밝다.
아기가 엄마 몸에 잉태되어 자라는 동안 엄마로부터 영양공급을 받기 위해 연결된 탯줄과 태반을 잘 갈무리해서 보관한 곳을 태실이라고. 한다.
그 태실이란 것이 역사의 흐름을 타고 왕의 태실에 이어 일반왕자들의 태를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 한글을 창제하여 일반백성도 글을 깨우치고 쓸 수 있도록 힘쓰신 세종대왕 때부터라고 한다.
그 세종께서 살아생전 왕자들의 태를 안치하기 위해 좋은 땅으로 낙점한 곳이 성주 땅이었다. 성주의 북쪽에 위치한 선석산 아래 선석사를 마주하고 멀리 가야산 자락이 설핏 보이는 인촌리 산 8번지는 울 집 마당에서도 마주 보이기는 한다.
그 태실에 문화관광 해설사로 배치되어 온 것이었다.
"네, 그렇지요? 오시는 분들께 터가 좋은 곳이라고 알리는 것뿐 아니라 저 역시도 그리 느끼기에매번 올 때마다 신나고 즐거워요. 보세요 그다지 높지도 넓지도 않건만 주변 산들이 마치 병풍 저럼 둘러싸여 있고요, 소나무가 잘 자라고 있답니다. 소나무가 잘 자란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이삼십 대에 속한다는 거지요. 그냥 가시지 말고 마음속 염원을 갖고 적어도 세 바퀴 정도 돌아보세요. 좋은 기운을 느끼실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손님들은 같이 온 동료분들과 기분 좋게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마치 탑돌이 하듯 진지한 자세가 된다.
그 행위를 통해 가정화목이나 건강을 바라기도 하고 취업이나 혹은 아기를 잉태하기 바라며 오는 젊은 부부도 간혹 있다. 이후 그 부부들 중에서 아기를 데리고 다시 오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말은 쉬 건네면서도 곰곰 생각해 보면 단순히 산의 기운으로만 그리 되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즉, 그분들은 그 먼저 마음속 염원을 이루기 위해 각오를 다졌을 것이고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날마다 살아가면서 지내고 잠을 자는 집이나 일하는 일터에서의 온기를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근래는 한 자리에서 생의 전부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즉.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이 다르고 직장 따라 여건 따라 연신 삶의 터전이 바뀐다.
또한 마음의 고함은 또 다른 곳일 수도 있다. 하루해가 뜨고 지면서 살아있는 존재들은 부단히 움직인다.
그 터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내든지 혹은
구미에 맞게 고쳐가며 살아가든 한다.
진정 머물고 싶은 터는 어떤 곳인가? 아직도 마음의 고향에 더 머물고 싶은가?
노력하여 새로운 터전을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보는것은 어떨까?
직장에 다니거나 몸이 불편해서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가고픈 마음을 다 실행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분들이 더 많은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 생각하면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이상 좋은 땅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성주인으로 성주에 살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