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예!
암 진단을 받고 두 계절을 보내고도 앞으로 어떻게 살지 몰라 갈핀 해 하면서 주위분들 도움으로 간신히 마음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을 무렵에야 얼결에 다시 돌아온 집이었다. 그렇더라도 때가 되면 몸상태가 궁금하니 병원에 가서 종양 상태를 살피곤 했다.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밥이 잘 안 먹히고 잠을 잘못 자고 체온이 정상을 밑돌면 하루 새끼 밥해결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니 남편과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위로는 기대도 말아야 하는데 외려 기대가 점점 커지니 서운함도 배가 되었다. 그런 상태로 병원에 가면 결과는 뻔했다.
혈압과 체온과 몸무게는 물론 종양도 나쁜 쪽으로 살짝 변동이 있었다. 번연히 그런 줄 알면서도 습관처럼 병원을 들락거렸다.
"왜 자꾸 의사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검사는 하세요? 가족들은 뭐라 하세요? 이 정도인걸 방치하면 나중에 더 커져서 수술도 못하게 되면 어쩌려고요? 겁 안 나세요?"
라는 말은 갈 때마다 병원 의사로부터 듣는 말이었다. 심지어 어떨 때는 '이렇게 검사만 할 거면 다음엔 오지 마라, 다른 병원 의사에게 가라 추천서 써줄게'란 말까지 듣고서 진료거부까지 받으면서도 돌아가며 내가 원하는 때에 가서 상태확인하기를 꾸준히 했다.
그럴 때마다 '예?, 예!'만 거듭했다.
그 와중에도 잘 지내지 못하는 이유는 톱니처럼 서로를 물고 계속 돌고 있었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이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 왔다. 아이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치른 가을 내내 집과 쉼터를 오가며 불안과 두려움 사이로 설마 하던 기대감이 정말 거짓말처럼 이뤄지자 내겐 뜻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났다.
설사변도 멈추고 체온도 조금씩 오르고 잠을 잘 잤으며 고무풍선 부풀리듯 잴 때마다 켜지던 종양이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 아주 조금씩 내 삶이 바뀌고 있었다. 순간순간 기쁨이 솟아오르자 새로운 의욕도 생겼다. 하다가 멈춘 일을 다시 할 용기를 내었으며 , 이전에 하다 쉬고 있던 호스피스봉사도 다시 재개했다.
피로감이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빨리 오고 먹는 것을 조절해야 하는 불편함 말고는 굳이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정상인의 칠십 퍼센트까지는 에너지가 다시 올라왔다.
그 갸름한 계란모양 크기의 종양은 이후 약 5년간 마치 안전핀이 꽂혀있는 수류탄 마냥 얌전하게 있었다.
그것은 보통의 일례를 벗어난 선택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수술이후 해야 할지도 모르는 통상적인 과정을 이겨낼 체력은커녕 꾸준히 노력할 인내심이나 금전적인 여유마저 없었다. 어쩌면 무모하고 억지 같은 믿음의 시작인 '곧장 집으로'란 성서 말씀에 '예'하였으니 이후 과정들을 받아들이고 기다려야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