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톺아봐 12

의미와 보람의 놀이공간, 마당

by 하리

근래 거의 같은 시각에 눈이 뜨인다. 잠자는 시간은 다른데도 말이다. 고맙고도 감사하다.

방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텃밭으로 살금살금 이동하면서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잡으려고 좀은 애썼다. 또한 글씨가 잘 안 보이는 걸 돋보기 끼고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몇 년 째다.

그렇게 저렇게 심각하다는 건강상태로도 엎치락뒤치락하던 난 지금 다시 안내소에서 손님이 오기를 대기하고 있다.

이전에는 번번 말할 기운조차 없어 말로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마저 쉬곤 했었다.

문화관광해설사란 일이 약간의 사실에다 부수적인 살을 붙여가며 전하는 노력이상으로 손님들로부터 좋은 기운과 보람을 받아서 또 다른 날을 살아낼 의욕을 충전하는 매력이 있다.


내게 있어 문화관광해설사의 일은 전공과는 상관없고 평소에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얼결에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백지에 붓으로 틀 잡듯 조금은 애태우며 알려고 했을 것이나 그 이후 꿋꿋이 공부하며 밀어야 하는 때에 와서는 현실과 쉽게 타협해서 대충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나름의 아는 바를 처음 접하는 낯선 사람들에게 전하는 재미가 조금씩 좋아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재미난 일조차 하지 못할 때에 쉼은 곧 또 다른 기회였던 것이다.

즉 , 아무런 생각 없이 살며 뛰어놀던 마당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차를 몰고 오가느라 당연한 듯 사용한 그 마당에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간 이야기의 결미를 써볼까 싶다.

어려서 자란 친정집 마당은 농사지은 곡식을 거두어들이기에는 좁았다. 잔치 때도 앞집 옆집 마당까지 빌렸었다. 그 좁던 마당대신 결혼해서 남편과 살림을 차린 터전은 사통발달 온통 빈터가 가득해서 한마디로 감당이 안 되었다.

손이 바지런한 것도 아닌 데다 비 건강체라 그저 가끔 가족이 공동으로 해야 하는 논밭농사에 손을 보태기도 힘이 달렸다.

천평 가까운 땅에다 목장건물 이백 평 남짓과 집으로 터 잡은 게 이십여 평이었으니 젖소들 운동장으로 어느 정도 울타리 쳐진 곳을 빼고도 칠팔백 평이 남아서 처음에는 온갖 것을 심었다.

참외하우스를 지어서 농사를 짓다가 어린나무묘목 키우느라 나누고 소가 늘어가니 목장규모가 커져갔다.

몇 년 뒤부터는 하우스를 철거한 곳에다 풀사료를 키우기 시작했다. 볏짚도 장만할 겸 벼농사를 애법

지었기에 뒷마당은 수년간 타작마당으로 활용되기도 했었다.

그 타작마당이 흙이고 보니 트랙터나 대형차가 오갈 때의 용도 외에는 온통 풀밭 천지가 된 지는 오래다.

그나마 땅옆에다 참깨와 들깨를 심고 가을에는 무배추를 키우다 보니 텃밭이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마당은 처음보다는 줄어드는 모양새다. 아랫채를 들이고 축사를 넓혔으며 텃밭도 생겼지만 여전히 우리 부부의 쉬는 시간을 침범할 만치 잡초천지다.

꽃이나 야채를 가꾸는 것도 얼마간 일지는 알 수없다. 어쩌면 앞으로는 꽃과 야채마저 해가 바뀌어도 저절로 자라는 품종으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힘이 달릴 테니 말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내게 있어 마당은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준 좋은 곳이다.

근래는 시골도 마당이 별로 없다. 관리가 힘드니 있는 마당도 대부분 시멘트 바닥으로 바뀌어서 화분 몇 개로 꽃밭을 대신한다. 그러니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마당으로 말할 수 있을까?

약간의 여유공간인 베린다를 칭해야 히나? 아님 공동 구역인 아파트 주변 산책로나 화단을 칭해야 할까?

아무려면 어떠랴! 진정한 마당은 아픔이나 기쁨 구분 않고 어울렁 더울렁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있는 바로 그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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