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텃밭으로 살금살금 이동하면서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잡으려고 좀은 애썼다. 또한 글씨가 잘 안 보이는 걸 돋보기 끼고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몇 년 째다.
그렇게 저렇게 심각하다는 건강상태로도 엎치락뒤치락하던 난 지금 다시 안내소에서 손님이 오기를 대기하고 있다.
이전에는 번번 말할 기운조차 없어 말로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마저 쉬곤 했었다.
문화관광해설사란 일이 약간의 사실에다 부수적인 살을 붙여가며 전하는 노력이상으로 손님들로부터 좋은 기운과 보람을 받아서 또 다른 날을 살아낼 의욕을 충전하는 매력이 있다.
내게 있어 문화관광해설사의 일은 전공과는 상관없고 평소에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얼결에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백지에 붓으로 틀 잡듯 조금은 애태우며 알려고 했을 것이나 그 이후 꿋꿋이 공부하며 밀어야 하는 때에 와서는 현실과 쉽게 타협해서 대충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나름의 아는 바를 처음 접하는 낯선 사람들에게 전하는 재미가 조금씩 좋아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재미난 일조차 하지 못할 때에 쉼은 곧 또 다른 기회였던 것이다.
즉 , 아무런 생각 없이 살며 뛰어놀던 마당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차를 몰고 오가느라 당연한 듯 사용한 그 마당에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간 이야기의 결미를 써볼까 싶다.
어려서 자란 친정집 마당은 농사지은 곡식을 거두어들이기에는 좁았다. 잔치 때도 앞집 옆집 마당까지 빌렸었다. 그 좁던 마당대신 결혼해서 남편과 살림을 차린 터전은 사통발달 온통 빈터가 가득해서 한마디로 감당이 안 되었다.
손이 바지런한 것도 아닌 데다 비 건강체라 그저 가끔 가족이 공동으로 해야 하는 논밭농사에 손을 보태기도 힘이 달렸다.
천평 가까운 땅에다 목장건물 이백 평 남짓과 집으로 터 잡은 게 이십여 평이었으니 젖소들 운동장으로 어느 정도 울타리 쳐진 곳을 빼고도 칠팔백 평이 남아서 처음에는 온갖 것을 심었다.
참외하우스를 지어서 농사를 짓다가 어린나무묘목 키우느라 나누고 소가 늘어가니 목장규모가 커져갔다.
몇 년 뒤부터는 하우스를 철거한 곳에다 풀사료를 키우기 시작했다. 볏짚도 장만할 겸 벼농사를 애법
지었기에 뒷마당은 수년간 타작마당으로활용되기도 했었다.
그 타작마당이 흙이고 보니 트랙터나 대형차가 오갈 때의 용도 외에는 온통 풀밭 천지가된 지는 오래다.
그나마 그 땅옆에다 참깨와 들깨를 심고 가을에는 무배추를 키우다 보니텃밭이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마당은 처음보다는 줄어드는 모양새다. 아랫채를 들이고 축사를 넓혔으며 텃밭도생겼지만 여전히 우리 부부의 쉬는 시간을 침범할 만치 잡초천지다.
꽃이나 야채를 가꾸는것도 얼마간 일지는 알 수없다. 어쩌면 앞으로는 꽃과 야채마저 해가 바뀌어도 저절로 자라는 품종으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힘이 달릴 테니 말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내게 있어 마당은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준 좋은 곳이다.
근래는 시골도 마당이 별로 없다. 관리가 힘드니 있는 마당도 대부분 시멘트 바닥으로 바뀌어서 화분 몇 개로 꽃밭을 대신한다. 그러니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마당으로 말할 수 있을까?
약간의 여유공간인 베린다를 칭해야 히나? 아님 공동 구역인 아파트 주변 산책로나 화단을 칭해야 할까?
아무려면 어떠랴! 진정한 마당은 아픔이나 기쁨 구분 않고 어울렁 더울렁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있는 바로 그곳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