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부터 내린 비가 진종일이다. 마당이 질펀하다. 연거푸 집을 나서는 통에 남편과의 대화는 말 그대로 초 스피드 단답형이 된 지 오래다. 지금껏 검진 한번 않고 병원이라면 질색을 하는 남편에게 오늘 아침에는 가방을 들고 나서기 직전 한마디 했다.
"그새 좀 어떠우?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난주 초였다. 때마침 쉬는 날이라 아침시간이 느긋했다. 딴엔 모처럼의 휴일이라 식탁에 올릴 반찬에 평소보다 더 시간을 들였다. 먹다 남은 김치로 찌개를 만들고 김칫독에서 새 김치를 꺼내왔다. 남편은 갓김치를 더 좋아해서 올해는 아예 독을 가득 채워 두었다. 모처럼의 비번이라 두부를 굽고 겉절이에다 생선조림도 했다.
그렇게 식전에 너무 많이 움직였나? 배가 고파왔다. 생각해 보니 전날 시어른댁에서 저녁밥을 일찍 먹었으니 공백시간이 길
기도 했다. 평소에도 아침 식사 시간이 늦은 편인데 그날은 거의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 하다가는 쓰러질 것 같아 목장으로 가 봤다.
참고로 목장을 하는 우리 집은 평소보다 식사 시간이 더 늦어질 때는 이유가 있다. 아직 겨울이니 일 년 내내 소 먹이용 짚을 실은 덤프트럭이 새벽에 왔다던지, 혹은 막 길들이기 시작한 새끼를 갓 낳은 어미소가 말썽을 부린다든지, 혹은 착유 중에 예상치 못한 가임소가 이른 시각에 산통이 와서 뒤처리 중이던지 말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걷자니 개들이 아우성이라 사료와 물을 먼저 주었다. 남편이 아직 착유실에서 일을 하고 있나? 아니면 육우축사에서 사료를 주나? 하고 기웃대는데 부스럭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어디지? 하고 살피는데 남편은 사료포 더미 위에 작업복차림으로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놀랬다. 어디 다친 건가?
늘 그렇지만 근래 설을 앞둔 시점에서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서두르는 어머님의 독촉 발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나? 아니면 황토방 옆에 정리되어 있는 장작을 장만하느라 무리해서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소리를 쳤다.
" 거기서 뭐하요? 놀랬잖아. 시간이 몇 시인데 밥 먹으러 오지도 않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건네자 남편은 그제야 몸을 일으키면서 어지럽다고 했다. 아침 작업도 겨우 했노라고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와서는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 안색도 안색이거니와 표정이 기가 빠진 모습이었다.
" 어지럽다. 속도 불편하고" 하더니 이내 구역질을 했다. 배고픈 것은 잠시 잊고 뭘 해야 하지? 하다가 우선 물을 가져다주었더니 안 마신다고 소리쳤다. 속이 불편한데 무슨 물이냐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거의 강압적으로 물을 마시게 했다.
그 후 체한 것 같다는 말에 손과 팔을 주무르고 머리 지압에다 엎드려 눕게 하고 등과 다리와 발까지 밟았다. 그 후 체온도 조금 올라왔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니 그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된 걸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남편은 막 삶은 밤을 몇 알 먹고 황토방으로 내려가 쉬었다. 어지럽고 메스꺼운 것의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다니 일단 휴식을 해보자고 권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한 마디씩 건넨 것이 거의 전부다. 밥을 아예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밥그릇을 비우니 그만하면 좀 나아진 걸까? 그런 짐작만 하고 지낸 지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어제만 해도 매주 가는 절투어에 남편은 자차를 두고 동생차에 얹혀서 갔다면서 어머님께선 수시로 불안함을 표현하는 전화를 했다. 그 말이 신경 쓰여서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 안부전화라도 걸어라며 병원추천까지 요구했다.
남편 스스로는 나와 결혼한 뒤에 병원을 간 적이 없다. 아니다. 한의원에 가서 침 맞고 한약은 가끔 지었다. 하지만 일반 검진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사소한 통증의 확인과 치료를 위한 병원행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남편임을 알기에 턱밑에서 아무리 내가 종용하거나 엄포를 놓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기에 이번에는 정말 우회작전이라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속이 탄다는 표현을 하면서 불안감을 조성하기보다 이제는 정말 스스로 마음을 열고 실행할 용기를 내야 할 때였다. 환갑 지나 칠순을 바라볼 나이에 아직도 부모님의 영에는 흔들리면서 스스로는 통제가 잘 안 되어 소리치며 방어하는 것이 일상사니 말이다.
지난 일주일 간 난 겉으로는 평상시처럼 지냈다. 마음속은 은근 불안했기에 기도를 하거나 조용한 클래식음악으로 달래면서 남편에게 병원행을 종용하기보다는 식사량이 줄지는 않았는지, 평상시처럼 작업은 하고 있는지 등만 살핀 한마디로 냉정한 아내로 지냈다.
그랬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문제가 생긴 것인가 싶다.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소문을 내고 아이들과 통화를 시도하더니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본인 차를 몰고 가까운 읍내를 벗어나 전문병원을 찾아갔단다. 그 자체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 텐데 또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필이면 경험이 별로 없는 의사였는지 아니면 말을 듣고 상황을 살펴보니 그게 아니라 싶었던지 담당의의 처방은 약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아들딸들은 의료 행위가 직접적이 아닌 것 같아 다른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다는 안을 단체 톡방에 내어 놓는다. 만약 정말 귀에 문제가 생긴 이석증이라면 내일은 보호자로 동행을 해서 근교 도시로 가서 시술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아이들과 합세해서 이번에야 말로 국가에서 해주는 종합 검진을 받게 하게 더 밀어붙일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