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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 아래 첫 집 21

꿰어야 보배

by 하리

한때는 간절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시들해지다 잊혀 간 것이 많다. 그중 가장 길게 애태운 것이 바로 글쓰기다.


"엄마, 엄마도 생각만 말고 계속 써봐,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어느 날 막내가 공부를 하다 쉬는 시간에 말을 붙여왔다.

"엄마가 말한 대로 하다 보니 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잖아?"

"알았어, 해 볼게."

하지만 그 말은 그때뿐이었다. 핑계야 여럿 있었다. '몸이 좋지 않다, 힘이 없다, 글 아니라도 할 게 많다 빨리 피곤하다.' 등등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실제적인 문제는 바로 진득이 앉아서 손가락을 움직일 마음 자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눈에 뵈는 대로 마음이 가고 그 마음은 걸핏하면 불안과 슬픔으로 뒤흔들렸다. 드러냄이 부끄럽고 이내 덮치는 혼란을 가라앉히는 방법도 터득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평하고 싶었다.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상태로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고 반성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부담이었다.

딸은 공부를 해보겠다는 말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몇 년 걸리긴 했다. 하지만 실행을 하기 시작하더니 매일 반복했다. 그 후 조금씩 자신감이 붙고 성적 또한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먹도록 옆구리 찌르기까지가 내가 한 거고 성실히 실행하는 딸의 모습을 통해 내가 다시 배워야 했다. 그런데 계속 핑계를 찾거나 망설였다.

구두의 약속도 약속이라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간신히 잡은 것이 바로 일기 쓰기였다. 이전에는 노트에다 적었는데 그때부터 컴퓨터로 했다. 낮엔 이리 흔들리고 저리 휘둘려가며 지내다가 밤이 되면 딸아이 옆에서 단 몇 줄이라도 써보자 하고 앉으면 낮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조심스레 하나씩 쓰다 보니 잠을 잘 땐 마음이 가벼워져 갔다. 그마저 가뭄에 콩 나듯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작은 평화와 기쁨은 그야말로 마음의 새로운 영양제였다.


좋은 일이나 나쁜 것조차 일단 적어 두는 것이 그다음에 볼 때 내 모습을 반성하거나 각오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또한 짧은 일기 쓰기가 어느 정도 습관화되고 난 뒤에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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