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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 아래 첫 집 22

약속은 지켜야 맛

by 하리

'함부로 약속하지 마라' 이 말인 즉, 사람에게나 신이거나 심지어 자신에게도 꼭 해야 할 일이라도 섣불리 약속은 하지 마라.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지키지 못하거나 살망하지 않게 하라'. 이렇게 해석하면 맞는 것인가? 새삼스레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스무 살 이전의 나는 나 자신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었다. 때가 되면 그렇게 되겠거니 하고 살아온 계획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팽개치는 것은 약속보다 훨씬 쉽게 행했다. 그 대신 후회는 엄청 길었다.

가슴 아픈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나름 목표를 설정 한 뒤 실행하려 애쓴 것이 아마도 엄마가 되고 난 이후가 아닌가 싶다. 이전에는 그저 부모님 계신 고향품으로 돌아가면 그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후회는 누가 내게 말을 건네지 않아도 혼자 있으면 더 쉽게 나 자신을 점령했다.

'아씨 때 공부를 마치고 서른 이전에 그럴듯한 글을 엮어 내리라.'는 두리뭉실한 내 생의 목표는 허당으로 마무리되었었다. 하여 서른에 이른 나는 그다음 목표 설정을 못해 혼란스러웠다.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날들에 기뻐하고 감사하였더라면 달랐을까? 하지만 내 성격은 그 단순함에 쉽게 스며들지 않았다.

결혼 한 이후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조금 아주 조금씩 달라져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혼을 결심할 무렵에 가진 마음만은 지키려고 애쓰고 산 것 같다.

'아이를 셋 낳겠다. 내 아버지처럼 과잉보호하지 않고 스스로 해본 뒤 실패할지라도 또다시 할 기회를 갖게 하도록 만 신경 쓰겠다. 맘에 들지 않는 학과일지라도 어떻게든 방통대를 졸업하겠다. 비록 시골생활을 선택했지만 주어진 환경을 넘어서서 일과 공부를 다 할 것이다. 등등'

그러고 보면 결혼 이후에 새로 생긴 엄마라는 역할 때문에 가능한 오기와 인내심이 조금씩 커진 것 같다. 비록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 올지라도 다시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할 힘은 아이들에게서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휘청대고 또 아파서 소리치고 하소연이 끊이지 않았지만 내 생에 있어 활기를 갖고 어려움 앞에서도 또 다른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행이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밤이 가고 또 새 아침이 오는 것처럼 어둠 대신 빛을 향해 걸을 수 있고 또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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