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 하루살이!

5. '다시 하고 싶어요.'

by 하리

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 고장에 몇 년 전 사드가 들어와 배치된다는 발표로 인해 난리가 났었다.

처음 주목받으며 지목된 곳은 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 옛날에는 봉수대가 있었다는 곳이다.

한 때 고분군이 가까이 있어 문화재 보호구역이었다지만 지금은 공군부대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사드는 지역의 앞산에서 등 뒤 끄트머리께 뒀다지만 그래도 지역 안이었다.

하여 한동안 몹시 몸살을 앓았다

아니. 지금도 아리고 시리다.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은 있으나 정말 진짜 목적은 아직도 모르겠다.


그 일이 있고도 벌써 6년이나 지났다. 좋네. 나쁘네. 받네. 안 받네, 갈등하는 사이 지역 사람들의 가슴은 쉬 아물지 못해 아팠다.

그래서였을까? 지혜롭고 발 빠른 분들의 노력으로 지역 사람들 마음을 달래고 화합의 실마리가 될 법한 프로그램인 '예비 문화도시'에 선정되어 작년에 이어 2년째 실시되었다.

사드 배치만큼은 아니었지만 우리 동네도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드문 드문 빈집과 빈터가 있었는데 거의 최근에 이사를 많이 오셨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니 그간의 오랜 관습과 동네만의 규칙 등에 변동이 올 수밖에 없었다. 하여 갈등이 조금씩 증폭되고 있었다.

이를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있을까 고민하는 중에 '예비 문화도시'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되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까지 보태어서 평소에는 어떤 모임이건 성실한 출석자는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연결이 되어 급히 길을 만들고 방향을 틀어서 갑자기 몇 개의 프로그램이 동시에 들어왔다.

다행히 동네 사람들께서 생전 처음 해보는 글과 그림 그리기를 낯설어하시면서도 곧 하면서 적응했다. 단 몇 분이었지만 자서전이 되고 문패와 초상화도 그려졌다. 그리고 어설픈 상태로도 풍물과 민요 발표회를 겸한 마을 잔치도 했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프로그램이 돌아갔으며 발표 준비를 하던 중에 폐막식까지 들어와서 기대 이상의 풍성하고 다양한 문화공연을 동네 안에서 맛본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잔치로 전체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 중에 발생한 경비지출에 대한 보고가 있어야 했다.

나는 근래 가계부를 쓴다고 해도 그날그날 나간 것을 기재한 뒤에 한 달 지출비 계만 내며 산지 몇 년이나 되었다. 정말 간편한 장부다. 그런데 이번 것은 달랐다. 나랏돈이라서 꼼꼼하게 불필요하다 싶은 서류까지 다 갖춰야 했다.


예로 강사를 모시고 배울 때 썼던 간식비 영수증에 간식 품목이 들어 있지 않으면 일일이 다시 가서 간이영수증을 받아와야 했다.

그뿐 아니라 서류 안의 내용 또한 일일이 물어가며 채워야 했다. 거의 날마다 틈틈이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비록 세월에 많이 흘렀지만 상업학교 출신인데 일주일이면 족하지 않을까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숫자 하나를 넣으려 하면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확인하면서 해야 했다. 그리고 중간에 부족한 것을 집어넣을 때도 날짜별로 한 장 한 장 다 찾아내어야 가능했다.

한 번은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센터장께서 마디 건네셨다.

'금 열심히 하셔서 내년에는 초보분들께 강의하세요.''라고 말이다.

그렇게 종이 한 장을 수십 번 만지고 놓기를 반복하고 나니 처음에는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해도 긴장감과 거부감이 올라오던 것이 차차 누그러져서 익숙해지고 있었다.

마지막 날은 비록 깔끔하게 다 마무리된 것이 아닌데도 직원에게 건넸다.

그제야 한동안 나를 괴롭힌 서류들과 정이 들어서인지 막상 내손에서 벗어나는 서류 앞에서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세 번째인가? 사무실 들렀을 때는 젊은 직원들 앞에서 그냥 다시 다 뱉어내고 싶다며 투정 어린 엄살도 부렸건만,

마지막 날엔 내년에 또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난 여전히 앞날을 뻔뻔? 하게

하루하루 채워 갈 것 같다.

단, 살아있다는 것만도 감사하니까!.

대신에 힘들다고 말을 다 뱉어내지 말고 좀 참고 기다려보자는 각오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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